IlbonhagPub Date : 2023-08-31DOI: 10.21442/djs.2023.60.08
Hwang-Hee Roh
{"title":"A Study on the Sustainability of Japanese Young People's Language: Based on the 『Basic knowledge on Modern Terms』","authors":"Hwang-Hee Roh","doi":"10.21442/djs.2023.60.08","DOIUrl":"https://doi.org/10.21442/djs.2023.60.08","url":null,"abstract":"본 논문은 한국과 일본의 영상미디어 콘텐츠(인터넷 통신언어, 영화 대본, 드라마 대본)를 통한 「若者ことば」에 주목하여 양국의 「若者ことば」의 지속성과 사전 등재양상을 규명하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연구에 착안하였다. 한・일 양국의 「若者ことば」의 10년 경과시점에도 지속유형 빈도순으로는 드라 마, 영화, 인터넷 통신언어의 순으로 확인하였다. 또한, 기존의 양국 「若者ことば」 의 웹상의 사전 탑재양상은 약 87%로 상당히 높게 도출되었다. 드라마와 영화대본의 지속 유형 양상의 특징으로는 양국 모두 부정적 기능을 내포하였다. 한국 젊은이들은 ‘과격하고 폭력적인 표현(은어∙속어∙욕설)’을 사용하 고 있었으며, 일본 젊은이들은 여전히 부정적 감정상태어의 ‘イ형용사축약표현’으 로 도출되었다. 그리고 양국 인터넷 통신언어에 나타난‘간략표현 즉 축약표현’과 ‘어휘합성표현’은 양국 젊은이들의 긍정적 기능으로 기발하고 창작적이며, 시간의 경제성 효율적인 면을 대변하고 있었다. 이 결과로, 요네카와(米川, 1994), 코야노 (小矢野, 1996) 주장과 다르게 지속된 한・일 양국의 지속 「若者ことば」 는 웹상의 각종 사전에도 등재되고 있어 일부 계층만이 쓰는 언어가 아닌 기성세대에게도 전 파되고 있으며 꾸준히 지속적인 유형양상으로 인식되어 앞으로도 점점 더 증가하 고 확대될 것으로 예측된다. 앞으로도 한・일 양국의 「若者ことば」연구는 기존의 집단의 하위계층인 언어대 상에서 점점 범위를 확대하여 깊이 있는 관찰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PeriodicalId":491996,"journal":{"name":"Ilbonhag","volume":"23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989599","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IlbonhagPub Date : 2023-08-31DOI: 10.21442/djs.2023.60.07
Hye-suk Kim
{"title":"A Study on Fishing Communities in the Senkaku Waters Japan and Taiwan : Focusing on Private Fisheries Agreements and Rule-Making","authors":"Hye-suk Kim","doi":"10.21442/djs.2023.60.07","DOIUrl":"https://doi.org/10.21442/djs.2023.60.07","url":null,"abstract":"일본은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무주지 선점론’을 내세워 센카쿠제도의 영유권 을 주장하고 국유화시켰다. 이로 인해 대만, 중국, 일본 간의 갈등이 첨예화 되었 다. 본고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대립과 갈등의 바다에서 어업공동체 간의 공생을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이다. 연구목적은 국민국가가 내세우는 영유권보다는 일본과 대만의 어업공동체의 생존, 생활권에 초점을 맞추어 양국 어민 간의 교류의 역사, 민간어업협약과 룰 만들기가 이루어진 배경과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로써 영 토문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어업공동체의 공생을 위한 조건으로 다음과 같은 점을 제시하였다. 첫째 국민국 가 영토주권의 논리보다는 주민의 생존, 생활권, 지역에 초점을 맞춘다. 어업공동 체의 생활권을 중심으로 협약을 맺으면 정치적 분쟁을 방지할 수 있다. 둘째 양국 어업공동체 간의 공식적인 룰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해왔던 비공식적인 룰 만들 기도 존중한다. 이를 통해 공동으로 사용한 전통적 어장을 보호한다. 셋째 어민, 협 동조합, 지자체 간의 교류와 의견을 표명하는 장을 확보하고 회합의 횟수를 늘려 협력과 소통의 기회를 확대시킨다. 센카쿠제도를 둘러싸고 국가간의 긴장이 고조 될 때 이전부터 교류해 왔던 민간어업단체가 먼저 움직여 민간어업협약을 체결함 으로써 긴장이 완화되었다. 넷째 특별협력수역, 삼각수역 등 특별수역을 설치해 작 업시간, 교대시간, 배의 수, 어획하는 기술 등의 구체적인 룰 만들기를 한다. 이로 써 어느 한 국가가 주체가 되어 어장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양국 어민들이 주체 가 되어 공동으로 자원을 이용하고 관리한다.","PeriodicalId":491996,"journal":{"name":"Ilbonhag","volume":"47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989248","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IlbonhagPub Date : 2023-08-31DOI: 10.21442/djs.2023.60.01
Min-jong SHIN
{"title":"‘Center and Periphery’ in Modern Art : Focusing on the Arts of Shinichi Yamada","authors":"Min-jong SHIN","doi":"10.21442/djs.2023.60.01","DOIUrl":"https://doi.org/10.21442/djs.2023.60.01","url":null,"abstract":"예술가의 각기 다른 환경에서의 경험은 그의 활동 및 예술에 어떠한 영향을 미 칠까.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화가 개인의 가치관과 작품은 어떻게 수용되고 해석 되며 평가될 수 있는가. 이 논문에서는 동일한 지향점을 지니고 창작활동에 전념 하였으나 일본 근대미술사 내에서의 평가는 상반되었던 사에키 유조(佐伯祐三, 1898~1928)와 야마다 신이치(山田新一, 1899~1991)의 이력과 예술관에 주목하여, 예술가의 이동과 체험이 그들의 예술(관) 형성 및 미술계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보 았다. 사에키와 야마다는 관학인 도쿄미술학교에서 함께 수학하며 당시 일본의 젊은 미술학도들을 열광케 한 전위적 회화 스타일을 지향했다. 이런 두 화가가 조형적 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은 1923년 발생한 간토 대지진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 다. 근대 서양화가들의 ‘성지’인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사에키와 달리 야마다는 가 족이 머무르고 있던 조선으로 피난했고, 이러한 서로 다른 월경은 두 화가의 예술 인생을 극명하게 갈라놓았다. 프랑스에 유학한 사에키는 포비즘의 대표주자인 블 라맹크(Maurice de Vlaminck, 1876~1958)와의 만남을 통해 창작활동의 전환점을 맞이했지만, ‘예술의 불모지’ 조선으로 향한 야마다에게는 ‘미성숙한’ 조선의 미술 계를 계몽하고 지도할 임무가 주어졌던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사실에 입각하여, 사에키와 야마다의 프랑스 유학 및 야마다 의 조선 활동을 비교 검토하며, 일본 근대 서양화가의 프랑스, 일본, 조선 미술계에 대한 인식과 예술관을 다각적으로 생각하였다.","PeriodicalId":491996,"journal":{"name":"Ilbonhag","volume":"23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989249","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IlbonhagPub Date : 2023-08-31DOI: 10.21442/djs.2023.60.09
Yao Meng, Kyongchul Lee
{"title":"A Study on the ‘Kai He’ of YunJing","authors":"Yao Meng, Kyongchul Lee","doi":"10.21442/djs.2023.60.09","DOIUrl":"https://doi.org/10.21442/djs.2023.60.09","url":null,"abstract":"본 고에서는 각 대표적인 『韻鏡』 校本과 先學들의 再構音을 참고하여 『韻鏡』에서 ‘開合’으로 표기되어 있는 네 개의 轉圖를 고찰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合口는 [u(w)+主母音+韻尾]라는 구조로 정의해야 한다. 학자들은 主母音이 u 나 o인 경우도 合口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通攝 등을 合口로 규정했던 것이다. 2) 第二轉을 ‘開合’으로 기재하는 것은 開口字와 合口字가 공존하는 것으로 판 단된다. 第二轉의 1等 冬韻은 開口로, 3等 鐘韻은 合口로 판단된다. 3) 第三轉과 第四轉의 ‘開合’은 후인들의 誤記나 增添에 의한 것으로 판단되며 원서는 ‘開’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4) 第十二轉을 ‘開合’으로 기재하는 것은 ‘開’으로 판단된다.","PeriodicalId":491996,"journal":{"name":"Ilbonhag","volume":"47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989257","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IlbonhagPub Date : 2023-08-31DOI: 10.21442/djs.2023.60.03
Takanori Hayao
{"title":"Suh Kyunsik discussing Jews and Palestinians : Korean Diaspora and the Quest for a “New Universality”","authors":"Takanori Hayao","doi":"10.21442/djs.2023.60.03","DOIUrl":"https://doi.org/10.21442/djs.2023.60.03","url":null,"abstract":"在日朝鮮人の批評家である徐京植は,民族的マイノリティとして差別を受ける苦 悩と,冷戦と独裁の下で兄二人が政治犯として投獄されている苦悩とを,西洋美術と いう「窓」を通して人間の普遍的な課題へと繋げることができた。これは徐のライフ ワークとなる人文紀行として知られている。他方で徐は,人種差別や植民地主義に抵 抗しながら,ディアスポラにある朝鮮人アイデンティティを肯定するために,ヨー ロッパでホロコーストを経験したユダヤ人の作家やイスラエルに故郷を奪われたパ レスチナ難民の作家の作品を早くから参照していた。このこともまた,在日朝鮮人の 時代経験が世界大の帝国主義の歴史の中に位置づけることが可能であり,普遍性を持 つということを示そうという試みであった。かつてはヨーロッパ世界が普遍性を僭 称し独占していたが,徐は東アジアの在日朝鮮人の経験をヨーロッパ文化史やユダヤ 人とパレスチナ人の文学という「窓」を通して再考することで,「新しい普遍」を創出し ようとしてきた。","PeriodicalId":491996,"journal":{"name":"Ilbonhag","volume":"40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989603","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IlbonhagPub Date : 2023-08-31DOI: 10.21442/djs.2023.60.13
Guk Cho
{"title":"Okuma Shigenobu(大隈重信)'s Perception of the Nation","authors":"Guk Cho","doi":"10.21442/djs.2023.60.13","DOIUrl":"https://doi.org/10.21442/djs.2023.60.13","url":null,"abstract":"이 논문은 막부(幕府) 말기부터 다이쇼(大正) 시기에 이르기까지 일본 근대사를 관통하며 활동한 정치가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의 이력을 재조명하며 그가 추 구한 근대 국가의 모습과 정치의 역할을 규명했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과 폐번치 현(廢藩置縣)의 과정에서 번을 벗어나 통일된 일본 국가를 추구한 오쿠마는 국민 의 여론을 반영한 정치, 구체적으로는 의원내각제를 통한 국가 통치가 시대적 흐 름이라 자각하고 그 실현을 위해 조야(朝野)를 넘나들며 진력했다. 오쿠마에게 민 의란 반드시 국민 다수의 의견을 의미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성숙한 국민들에 의한 여론 형성과 이에 기반한 정권 획득, 국정 운영이 이뤄질 때야말로 진정한 헌 정의 실시라고 오쿠마는 인식했다. 이러한 점에서 오쿠마는 단순히 여론에 영합한 임기응변식 정치가 아닌, 일관된 인식 속에서 정치활동을 벌인 정치가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여론을 반영한 정치, 시대 정신에 민감히 반응한 오쿠마였기에 ‘안으로는 입헌주의, 밖으로는 제국주의’라는 당시 일본의 상황을 충실히 반영한 대외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는 현실 정치가로서의 오쿠마의 미덕과 한계를 보 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PeriodicalId":491996,"journal":{"name":"Ilbonhag","volume":"111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989600","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IlbonhagPub Date : 2023-08-31DOI: 10.21442/djs.2023.60.06
Nam-eun Kim
{"title":"Japan's Geopolitical Perceptions and Strategies in the 21st Century","authors":"Nam-eun Kim","doi":"10.21442/djs.2023.60.06","DOIUrl":"https://doi.org/10.21442/djs.2023.60.06","url":null,"abstract":"본 연구는 21세기 일본의 지정학적 인식과 전략을 추동하는 기저 요인을 밝히 는 것이 목적이다. 일본의 지정학적 인식과 전략은 일본 안보에 위협이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것으로 당위성을 확보하고, 국제사회에 대한 일본의 역할과 공 헌을 강조하며 강력한 중국 억지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의 독자적이고 견고한 방위체제 강화, 미국과의 군사협력 강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 는 국가와의 연대 강화를 내세운다. 특히 일본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 을 하나로 엮어내며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등과 같은 새로운 지리적 개념을 도입하고, 이 지역에 일본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긴다. 일본의 지 정학적 전략에서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등장한 보편적 가치는, 일본이 자국의 이 익을 위한 전략적 공간을 계속 확대해나가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으며, 동시에 지 정학적 이해관계에 기반을 두고 중국 견제의 정당화 논리로 제시되고 있다. 또한 보편적 가치를 지역에 접목하여 새로운 지역의 경계와 질서를 구축하려는 고도의 지정학적 전략은 필연적으로 일본 독자적 방위력 강화를 전제로 한다.","PeriodicalId":491996,"journal":{"name":"Ilbonhag","volume":"1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989605","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IlbonhagPub Date : 2023-08-31DOI: 10.21442/djs.2023.60.04
Yeoni Kwon
{"title":"A Study on the Human Rights of Zainichi Koreans from the Perspective of International Norms","authors":"Yeoni Kwon","doi":"10.21442/djs.2023.60.04","DOIUrl":"https://doi.org/10.21442/djs.2023.60.04","url":null,"abstract":"본 논문은 2013년 고교무상화 대상에서 제외된 조선학교를 중심으로 전개된 무 상화운동의 의의와 한계, 그리고 향후의 방향성에 대해서 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유엔의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과 ‘아동의 권리조 약’에는 교육을 통한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존중을 강화하기 위해 고등교육의 단 계적 무상화 조항을 정하고 있으며, 아동의 최선의 이익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 을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엔은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 조치에서 제외한 일본 정부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친 수정 권고를 해왔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 조 치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 조선학교 관계자들에 의한 재판 소송, 배제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 및 시위, 유엔 인권위 방문 등을 통해 무상화운동은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배제 조치에 항의하기 위해 ‘민족차별’을 주장하며 운동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5곳에서 제기되었던 무상 화 재판은 모두 패소 판결이 났으며, 지자체의 조선학교 보조금의 감소, 조선학교 학생수의 급감 등 운동의 성과를 재고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운동의 아젠다 설정의 어려움, 국내외 정치상황 등 한정적 기회구조 하에서 향 후 무상화운동의 방향성은 국제사회의 초국가적 인권운동과의 연대를 통한 보편 적 규범에 입각한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 판단과 결정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은 조선학교의 ‘학생들’이다. 보편적 인권규범에 입각하여 국제사회와 연대하고 여론에 호소하는 것이 일본정부와 사회를 움직이는데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라 할 수 있다.","PeriodicalId":491996,"journal":{"name":"Ilbonhag","volume":"68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988993","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IlbonhagPub Date : 2023-08-31DOI: 10.21442/djs.2023.60.02
Jaehyuk CHOI
{"title":"Experimental State through the Viewfinder : Manchukuo Represented in Japanese Avant-Garde Photography and Photojournalism","authors":"Jaehyuk CHOI","doi":"10.21442/djs.2023.60.02","DOIUrl":"https://doi.org/10.21442/djs.2023.60.02","url":null,"abstract":"「신천지」로서의 이미지가 넘친 만주국은 제국 일본 지식인, 예술인들이 각자 유 토피아를 기획한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그들이 폐색 상황에 있던 본토에 비해 어 느 정도 자유로운 실험과 자신의 이론 적용이 가능한 장소 또는 ‘타불라 라사’로서 만주국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만주국이 정치적으로는 문제를 안고 있 더라도 전위적 건축가들에게는 전시통제 하의 일본에서는 불가능한 계획을 실험 할 수 있는 장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자유로운 실험이 가능한 만주국이라는 이미 지는 당시 건축가뿐만 아니라 문예 전반의 공통된 경향이었다. 「가상국가(도시)로 서의 만주국」을 마음껏 계획한 것이 건축영역이었다고 말한다면, 「파인더 속의 실 험국가」를 자유자재로 모색한 것이 사진영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전위사진 과 보도사진에 있어 만주는 실험실로서 적극적으로 인식되었다. 본고에서는 만주 국과 일본 근대 사진과의 관계를 다루면서 「전위」와 「실험」이라는 개념에 주목해 보았다. 최근 아방가르드 연구에서는 「지정학적 전위」로서 만주국을 위치짓는 시 점이 제기되고, 만주국이 예술적 전위와 정치적 전위, 쌍방에 있어 신천지였음이 밝혀져 왔다. 본고에서 본 만주사진은 그것을 단적으로 담아낸 절호의 자료이며, 다양한 전위의 입장과 시선이 교차하고 얽힌 것을 확인했다. 내지의 전위사진가와 재만일본인 전위(조형) 사진가들은 스스로의 「새로움」, 즉 「일상 속의 초현실」과 「신국가에 상응하는 첨단(=조형)」을 적용, 실험하는 장소로서 만주를 ”발견”했다. 그리고 보도사진가 또한 「조국의 최일선」이 된 「만주의 전위」에 서 그 정보를 「본대」인 일본을 향해 발신한 이른바 만주는 이중의 아방가르드였던 것이다.","PeriodicalId":491996,"journal":{"name":"Ilbonhag","volume":"24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989254","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IlbonhagPub Date : 2023-08-31DOI: 10.21442/djs.2023.60.05
Kyoung-lee Kim
{"title":"Desire to Winning the War Embodied in the Mock battle of the Imperial Japanese Army : Focused on the Large-scale Field Maneuver Exerices of the Imperial Japanese Army","authors":"Kyoung-lee Kim","doi":"10.21442/djs.2023.60.05","DOIUrl":"https://doi.org/10.21442/djs.2023.60.05","url":null,"abstract":"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지속되는 내란을 경험하면서 강력한 제국 군대의 필 요성에 부딪혔다. 이에 따라 일본 육군은 프랑스, 해군은 영국 군제를 수용하고 근 위사단을 정비했지만, 최종적으로 훈련된 장교와 조직력, 사단제로서 공격력을 갖 춘 독일식 군제로 편제했다. 그 결과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였고 이는 일본 이 서구 열강에 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 정부는 천황제 국가 에서 절대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군부를 강화하기 위해 군정과 군령을 분리하여 천 황을 황군의 대원수, 병사는 전쟁에서 죽음도 불사하는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추종 자로 만들었다. 일본 육군은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유럽의 ‘대 기동훈련’을 ‘육군특별대연습’이라는 이름으로 1892년부터 1936년까지 매년 실시했다. 육군대 연습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 전략과 전술, 새로운 병기 확인이라는 군사훈련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외국의 군 관계자와 외빈 참관을 허용하여 제국 일본의 군사력을 광 범위하게 전시했고, 이는 20세기 초 한국과 청나라(중국)를 둘러싼 국제관계성을 재확인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일본 국내에서는 대 기동훈련을 시각화한 우키요에, 사진첩, 그림엽서, 스탬프를 통해 강력한 일본 육군과 대원수 천황의 표상을 대중 화하고 대연습 참관과 천황의 알현이라는 현장 활동으로 미래 황군이 될 아동의 군사 교육과 상무정신 고양의 방법으로 활용하였다. 결과적으로 매년 개최된 대연 습은 일본 국민이 ‘전쟁’을 일상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 제국 일본의 전승 도취를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PeriodicalId":491996,"journal":{"name":"Ilbonhag","volume":"103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989251","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