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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막부(幕府) 말기부터 다이쇼(大正) 시기에 이르기까지 일본 근대사를 관통하며 활동한 정치가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의 이력을 재조명하며 그가 추 구한 근대 국가의 모습과 정치의 역할을 규명했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과 폐번치 현(廢藩置縣)의 과정에서 번을 벗어나 통일된 일본 국가를 추구한 오쿠마는 국민 의 여론을 반영한 정치, 구체적으로는 의원내각제를 통한 국가 통치가 시대적 흐 름이라 자각하고 그 실현을 위해 조야(朝野)를 넘나들며 진력했다. 오쿠마에게 민 의란 반드시 국민 다수의 의견을 의미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성숙한 국민들에 의한 여론 형성과 이에 기반한 정권 획득, 국정 운영이 이뤄질 때야말로 진정한 헌 정의 실시라고 오쿠마는 인식했다. 이러한 점에서 오쿠마는 단순히 여론에 영합한 임기응변식 정치가 아닌, 일관된 인식 속에서 정치활동을 벌인 정치가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여론을 반영한 정치, 시대 정신에 민감히 반응한 오쿠마였기에 ‘안으로는 입헌주의, 밖으로는 제국주의’라는 당시 일본의 상황을 충실히 반영한 대외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는 현실 정치가로서의 오쿠마의 미덕과 한계를 보 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