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日本皇军模拟战役所体现的战争求胜欲——以日本皇军大规模野战机动演习为例","authors":"Kyoung-lee Kim","doi":"10.21442/djs.2023.60.05","DOIUrl":null,"url":null,"abstract":"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지속되는 내란을 경험하면서 강력한 제국 군대의 필 요성에 부딪혔다. 이에 따라 일본 육군은 프랑스, 해군은 영국 군제를 수용하고 근 위사단을 정비했지만, 최종적으로 훈련된 장교와 조직력, 사단제로서 공격력을 갖 춘 독일식 군제로 편제했다. 그 결과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였고 이는 일본 이 서구 열강에 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 정부는 천황제 국가 에서 절대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군부를 강화하기 위해 군정과 군령을 분리하여 천 황을 황군의 대원수, 병사는 전쟁에서 죽음도 불사하는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추종 자로 만들었다. 일본 육군은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유럽의 ‘대 기동훈련’을 ‘육군특별대연습’이라는 이름으로 1892년부터 1936년까지 매년 실시했다. 육군대 연습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 전략과 전술, 새로운 병기 확인이라는 군사훈련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외국의 군 관계자와 외빈 참관을 허용하여 제국 일본의 군사력을 광 범위하게 전시했고, 이는 20세기 초 한국과 청나라(중국)를 둘러싼 국제관계성을 재확인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일본 국내에서는 대 기동훈련을 시각화한 우키요에, 사진첩, 그림엽서, 스탬프를 통해 강력한 일본 육군과 대원수 천황의 표상을 대중 화하고 대연습 참관과 천황의 알현이라는 현장 활동으로 미래 황군이 될 아동의 군사 교육과 상무정신 고양의 방법으로 활용하였다. 결과적으로 매년 개최된 대연 습은 일본 국민이 ‘전쟁’을 일상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 제국 일본의 전승 도취를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PeriodicalId":491996,"journal":{"name":"Ilbonhag","volume":"103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title\":\"Desire to Winning the War Embodied in the Mock battle of the Imperial Japanese Army : Focused on the Large-scale Field Maneuver Exerices of the Imperial Japanese Army\",\"authors\":\"Kyoung-lee Kim\",\"doi\":\"10.21442/djs.2023.60.05\",\"DOIUrl\":null,\"url\":null,\"abstract\":\"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지속되는 내란을 경험하면서 강력한 제국 군대의 필 요성에 부딪혔다. 이에 따라 일본 육군은 프랑스, 해군은 영국 군제를 수용하고 근 위사단을 정비했지만, 최종적으로 훈련된 장교와 조직력, 사단제로서 공격력을 갖 춘 독일식 군제로 편제했다. 그 결과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였고 이는 일본 이 서구 열강에 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 정부는 천황제 국가 에서 절대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군부를 강화하기 위해 군정과 군령을 분리하여 천 황을 황군의 대원수, 병사는 전쟁에서 죽음도 불사하는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추종 자로 만들었다. 일본 육군은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유럽의 ‘대 기동훈련’을 ‘육군특별대연습’이라는 이름으로 1892년부터 1936년까지 매년 실시했다. 육군대 연습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 전략과 전술, 새로운 병기 확인이라는 군사훈련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외국의 군 관계자와 외빈 참관을 허용하여 제국 일본의 군사력을 광 범위하게 전시했고, 이는 20세기 초 한국과 청나라(중국)를 둘러싼 국제관계성을 재확인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일본 국내에서는 대 기동훈련을 시각화한 우키요에, 사진첩, 그림엽서, 스탬프를 통해 강력한 일본 육군과 대원수 천황의 표상을 대중 화하고 대연습 참관과 천황의 알현이라는 현장 활동으로 미래 황군이 될 아동의 군사 교육과 상무정신 고양의 방법으로 활용하였다. 결과적으로 매년 개최된 대연 습은 일본 국민이 ‘전쟁’을 일상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 제국 일본의 전승 도취를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PeriodicalId\":491996,\"journal\":{\"name\":\"Ilbonhag\",\"volume\":\"103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Ilbonhag\",\"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21442/djs.2023.60.05\",\"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Ilbonhag","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21442/djs.2023.60.05","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Desire to Winning the War Embodied in the Mock battle of the Imperial Japanese Army : Focused on the Large-scale Field Maneuver Exerices of the Imperial Japanese Army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지속되는 내란을 경험하면서 강력한 제국 군대의 필 요성에 부딪혔다. 이에 따라 일본 육군은 프랑스, 해군은 영국 군제를 수용하고 근 위사단을 정비했지만, 최종적으로 훈련된 장교와 조직력, 사단제로서 공격력을 갖 춘 독일식 군제로 편제했다. 그 결과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였고 이는 일본 이 서구 열강에 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 정부는 천황제 국가 에서 절대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군부를 강화하기 위해 군정과 군령을 분리하여 천 황을 황군의 대원수, 병사는 전쟁에서 죽음도 불사하는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추종 자로 만들었다. 일본 육군은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유럽의 ‘대 기동훈련’을 ‘육군특별대연습’이라는 이름으로 1892년부터 1936년까지 매년 실시했다. 육군대 연습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 전략과 전술, 새로운 병기 확인이라는 군사훈련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외국의 군 관계자와 외빈 참관을 허용하여 제국 일본의 군사력을 광 범위하게 전시했고, 이는 20세기 초 한국과 청나라(중국)를 둘러싼 국제관계성을 재확인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일본 국내에서는 대 기동훈련을 시각화한 우키요에, 사진첩, 그림엽서, 스탬프를 통해 강력한 일본 육군과 대원수 천황의 표상을 대중 화하고 대연습 참관과 천황의 알현이라는 현장 활동으로 미래 황군이 될 아동의 군사 교육과 상무정신 고양의 방법으로 활용하였다. 결과적으로 매년 개최된 대연 습은 일본 국민이 ‘전쟁’을 일상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 제국 일본의 전승 도취를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