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re to Winning the War Embodied in the Mock battle of the Imperial Japanese Army : Focused on the Large-scale Field Maneuver Exerices of the Imperial Japanese Army

Ilbonhag Pub Date : 2023-08-31 DOI:10.21442/djs.2023.60.05
Kyoung-le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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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지속되는 내란을 경험하면서 강력한 제국 군대의 필 요성에 부딪혔다. 이에 따라 일본 육군은 프랑스, 해군은 영국 군제를 수용하고 근 위사단을 정비했지만, 최종적으로 훈련된 장교와 조직력, 사단제로서 공격력을 갖 춘 독일식 군제로 편제했다. 그 결과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였고 이는 일본 이 서구 열강에 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 정부는 천황제 국가 에서 절대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군부를 강화하기 위해 군정과 군령을 분리하여 천 황을 황군의 대원수, 병사는 전쟁에서 죽음도 불사하는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추종 자로 만들었다. 일본 육군은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유럽의 ‘대 기동훈련’을 ‘육군특별대연습’이라는 이름으로 1892년부터 1936년까지 매년 실시했다. 육군대 연습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 전략과 전술, 새로운 병기 확인이라는 군사훈련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외국의 군 관계자와 외빈 참관을 허용하여 제국 일본의 군사력을 광 범위하게 전시했고, 이는 20세기 초 한국과 청나라(중국)를 둘러싼 국제관계성을 재확인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일본 국내에서는 대 기동훈련을 시각화한 우키요에, 사진첩, 그림엽서, 스탬프를 통해 강력한 일본 육군과 대원수 천황의 표상을 대중 화하고 대연습 참관과 천황의 알현이라는 현장 활동으로 미래 황군이 될 아동의 군사 교육과 상무정신 고양의 방법으로 활용하였다. 결과적으로 매년 개최된 대연 습은 일본 국민이 ‘전쟁’을 일상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 제국 일본의 전승 도취를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日本皇军模拟战役所体现的战争求胜欲——以日本皇军大规模野战机动演习为例
明治维新以后,日本经历了持续的内乱,遇到了强大的帝国军队的必要性。因此,日本陆军和海军分别接受了法国和英国的军制,整顿了近卫师团,但最终将其编制为经过训练的军官和组织能力、师团制,具备攻击力的德国式军制。结果,日本在清日战争中取得了胜利,这成为日本进入西欧列强的契机。清日战争以后,日本政府为了在天皇制国家中加强具有绝对主义性质的军部,将军政和军令分离,将天皇制变成了皇军的大元帅,将士兵变成了在战争中不惜牺牲的天皇制意识形态的追随者。日本陆军为维持这一系统,以“陆军特别大演习”的名义,从1892年至1936年每年都在欧洲实施“大机动演习”。陆军大演习把战争引向胜利的战略和战术,新兵器,军事训练,但在国际上“确认外国军方负责人和外宾参观,允许帝国日本的军事力量,广范围地展示了,这与20世纪初韩国围绕清朝(中国)重申国际关系的机会。”在日本国内大机动训练视觉化的浮世绘、相册、明信片、邮票通过强有力的日本陆军和大众化大元帅天皇的表象,大演习“参观”和“谒见天皇的现场活动,所以儿童成为未来皇军的军事教育和尚武精神,用教育的方法。结果,每年举行的大演习形成了日本国民能够日常接受“战争”的社会氛围,进而成为强化帝国日本战胜陶醉的机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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