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HONG(sa)Pub Date : 2019-09-01DOI: 10.16957/sa..98.201909.257
민유기
{"title":"2000년대 중반 프랑스의 불법체류자 자녀 교육권을 위한 시민불복종 운동","authors":"민유기","doi":"10.16957/sa..98.201909.257","DOIUrl":"https://doi.org/10.16957/sa..98.201909.257","url":null,"abstract":"이 논문의 목적은 프랑스에서 엄격한 이민규제와 불법체류자 추방 정책이 적용되던 2000년대 중반 불법체류자 자녀 교육권을 위한 시민불복종 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민정책과 불법체류자 합법화 흐름을 개괄적으로 검토하였다. 이후 2002-2007년 시라크 대통령 시기 두 차례 내무부 장관을 지낸 사르코지의 광범위한 불법체류자 추방 정책을 고찰했고, 엄격한 이민규제에 대한 주요 일간지 보도의 시각을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2006년 불법체류자 교육권을 위한 시민불복종 운동과 이 운동을 주도한 시민단체 ‘국경없는 교육망’의 활동을 분석하였다. 불법체류 자녀 교육권을 위한 시민불복종은 국민국가의 시민과 다르게 권리를 지니지 못한 불법체류자들에게 ‘권리를 가질 권리’를 부분적으로 제공하였다. 이는 시민들의 사회적 합의와 억압적 공권력에 대한 시민불복종이 기존의 법과 제도가 허용하지 않는 권리의 획득을 가능하게 만든 역사적 사례이다.","PeriodicalId":398497,"journal":{"name":"SA-CHONG(sa)","volume":"19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19-09-0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29004569","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SA-CHONG(sa)Pub Date : 2019-05-01DOI: 10.16957/SA..97.201905.259
윤선자
{"title":"프랑스 공화 2년의 마라 숭배 -공포정치의 탄생과 민중적 영웅주의-","authors":"윤선자","doi":"10.16957/SA..97.201905.259","DOIUrl":"https://doi.org/10.16957/SA..97.201905.259","url":null,"abstract":"이 논문의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마라 숭배와 공포정치 탄생의 관련성을 통해 의례의 정치적 의미를 알아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적 영웅주의의 성격을 탐구하는 것이다. 1793년 7월 13일 마라가 암살되면서 일련의 장례식과 장례행진, 심장 안치식 등이 거행되었다. 슬픔과 분노 속에서 상퀼로트를 중심으로 복수를 위한 공포정치가 요구되었지만 로베스피에르는 신중했다. 공포정치의 요구에 명확한 근거를 제공한 것이 장례식에 전시된 마라의 시신과 상처였다. 그것은 혁명 초부터 도처에 존재했던, 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반혁명적 귀족의 음모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명확하고 가시적인 증거였다.\u0000마라의 장례 절차가 끝난 이후, ‘마라의 정신’을 계승한 정치적 고발이 시민적 덕목으로 고양되고 공포정치에 대한 요구가 본격화되었다. 결국 1793년 9월 5일 공포정치가 제도화되기에 이르렀다. 에베르는 ‘제2의 마라’를 자처하며 정치적 고발의 대상을 넓혀갔다. 하지만 상퀼로트에 정치적, 문화적 이질감을 느낀 로베스피에르는 에베르를 제거함과 동시에 새롭게 바라 숭배를 내세워 마라 숭배를 무력화시켰다. 마라 숭배가 정치적 고발과 분열을 일으켰다면, 바라 숭배의 목적은 그 분열을 메우고 통합을 성취하는 것이었다.\u0000마라를 향한 추모의 열정은 공화 2년 프랑스 전국을 달구었다. 그 과정에서 마라 숭배가 탄생하고 새로운 혁명적 영웅상이 구체화되었다. 마라 숭배에 사용된 수많은 추도문과 거기에 반영된 집단 심성을 통해 민중적 영웅주의의 몇 가지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유혈적 표현주의와 종교적 심성, 카니발주의를 특징으로 했다. 이것은 혁명 엘리트의 고전주의적 영웅주의와 달리 민중의 오래된 전통과 심성을 반영했다. 본 논문을 통해 민중적 영웅주의의 특징과 더불어, 마라 숭배가 실제 공포정치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기어츠의 가설, 즉 “의례는 단지 권력을 반영하고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창출하고 유지한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PeriodicalId":398497,"journal":{"name":"SA-CHONG(sa)","volume":"1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19-05-0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17037349","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SA-CHONG(sa)Pub Date : 2019-05-01DOI: 10.16957/SA..97.201905.303
M. Herzog
{"title":"Left-Wing Conscience: Casuistry in Twentieth Century Social and Cultural Thought","authors":"M. Herzog","doi":"10.16957/SA..97.201905.303","DOIUrl":"https://doi.org/10.16957/SA..97.201905.303","url":null,"abstract":"","PeriodicalId":398497,"journal":{"name":"SA-CHONG(sa)","volume":"48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19-05-0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15025237","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SA-CHONG(sa)Pub Date : 2019-01-01DOI: 10.16957/SA..96.201901.151
홍용진
{"title":"중세 말 프랑스의 화폐 개주와 왕권 이미지 생산(1290-1360)","authors":"홍용진","doi":"10.16957/SA..96.201901.151","DOIUrl":"https://doi.org/10.16957/SA..96.201901.151","url":null,"abstract":"본 논문은 13세기 말부터 14세기 중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프랑스 왕정이 실시한 화폐 개주를 기존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차원의 연구들을 바탕으로 이미지 생산이라는 정치문화사의 시각에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이 시기 동안 수차례 이루어진 화폐 개주는 분명히 왕정의 재정 확충을 위한 편법으로 시행되었으며 이는 당대 사회에 많은 사회ㆍ경제적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여러 번 이루어진 화폐 개주는 그만큼 다양한 화폐 이미지들을 창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당시 왕정이 처한 여러 위기들에 대해 왕권이 이미지를 통해 정치적 의사소통을 시도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개주 화폐에 새롭게 창출된 이미지는 화폐 주권을 내세우며 화폐 이미지를 독점한 국왕의 선전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당대의 정치적 상황에 긴밀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으로 기능하기도 했다. 즉 왕권과 화폐의 통화가치가 불안정할수록 왕권 이미지는 더욱 풍성하게 창출되었다.\u0000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러한 의사소통은 금화나 은화와 같은 고가의 화폐를 사용하는 사회적 상층에 국한되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즉 재정과 정치문제에 관련하여 주요한 의견을 피력하던 대귀족이나 대부르주아들만이 이러한 이미지들을 직접 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정치사회의 여론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화폐 이미지의 효과를 화폐 사용자에게만 국한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이 당시 프랑스에서 화폐는 정치, 경제, 문화의 영역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게 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화폐는 국가체제의 등장과 함께 전쟁과 재정, 정치적 의사소통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지점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PeriodicalId":398497,"journal":{"name":"SA-CHONG(sa)","volume":"18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19-01-0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21056477","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SA-CHONG(sa)Pub Date : 2018-09-01DOI: 10.16957/sa..95.201809.165
김한신
{"title":"The Historical Approaches to the Growth of the Lay Buddhist Society during the Medieval Period in China","authors":"김한신","doi":"10.16957/sa..95.201809.165","DOIUrl":"https://doi.org/10.16957/sa..95.201809.165","url":null,"abstract":"","PeriodicalId":398497,"journal":{"name":"SA-CHONG(sa)","volume":"38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18-09-0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21911294","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SA-CHONG(sa)Pub Date : 2018-09-01DOI: 10.16957/sa..95.201809.197
Jung-Ha Kim
{"title":"A Study on the Types of Civilization Exchange of Medieval Mediterranean","authors":"Jung-Ha Kim","doi":"10.16957/sa..95.201809.197","DOIUrl":"https://doi.org/10.16957/sa..95.201809.197","url":null,"abstract":"지중해는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경제권’의 바다였다. 연안지역에 건설된 수많은 마을과 도시들은 전쟁과 동맹을 반복했지만 이는 서로를 필요로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지중해는 열린 바다의 대외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바다는 결코 고립된 문명이 아니었다. 외부로부터 지속적인 영향이 유입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문명적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u0000아울러 역사적으로 지중해의 지리·문화적 경계는 일치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지중해 역사에 대한 연구에서는 부분들의 전체라는 관점보다는 전체속의 부분들에 대한 고찰, 즉 부분들 간에 전개되는 ‘경쟁적 협력’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u0000관점을 바꾸면 새롭게 보인다. 어떤 시선으로 해석하는가에 따라 역사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 본 연구에서는 문명 간 교류의 관점 또는 long term prospective의 관점에서 지중해의 문명교류를 살펴보았다.\u0000중세 지중해 문명교류의 사례로는 세 가지 유형을 제시할 수 있다: 안달루시아의 접변형 교류유형, 시칠리아의 중첩형 교류유형, 예루살렘의 등배형 교류유형.\u0000세 교류유형의 공통점은 종교적으로는 유일신 종교이며 Abrahamic religions라는 사실이다. 또한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이 공존하였으며 이들 모두에게 정치와 종교는 사실상 삶을 지배하는 단일요인이었다.\u0000안달루시아는 8세기 초반부터 15세기 말까지 이슬람이 지배를 받았지만 동시에 역사적으로는 이슬람의 지배와 기독교세계의 재정복 활동이 공존하였다. 사회적 다양성의 요인이 매우 풍부했지만 사회적 유동성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종교, 정치, 이념, 인종의 관점에서는 갈등의 사례들이 빈번했지만, 문화와 경제의 분야에서는 교류와 접변이 이루어지고 있었다.\u0000시칠리아의 교류유형에서는 외세에 의한 지속적인 지배가 역사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이미 고대부터 시칠리아의 독립적인 정치권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을 고려할 때 시칠리아의 교류유형은 여러 요인들이 함께 섞이는 못한 상태로 단순히 공존하는 특징을 가진다.\u0000예루살렘은 세속적으로는 동서문명 간 교역의 중요한 관문이었으며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세계와 이슬람 문명 모두에게 성지순례의 도시였다. 문화 간 유사성과 차이가 분명하게 존재했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에 있어 차이는 다양성이 아니라 차별과 갈등의 의미로 해석되었으며, 특히 19세기 이후 이러한 대결구도의 관점은 더욱 강화되었다.","PeriodicalId":398497,"journal":{"name":"SA-CHONG(sa)","volume":"60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18-09-0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15580056","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SA-CHONG(sa)Pub Date : 1900-01-01DOI: 10.16957/SA..96.201901.115
차승현
{"title":"9~10세기 왕권의 해체와 지방 권력의 성장 -프랑스 아키텐의 사례-","authors":"차승현","doi":"10.16957/SA..96.201901.115","DOIUrl":"https://doi.org/10.16957/SA..96.201901.115","url":null,"abstract":"중세 초 프랑스 남부의 아키텐은 프랑크 왕국과 매우 상이한 사회ㆍ경제ㆍ문화 구조를 지니고 있었으며 정복당한 이후에도 쉽게 동화되지 않았다. 781년 카롤루스 마그누스는 중앙집권주의를 포기하고 아키텐 왕국을 창건하여 주민들의 분리주의 성향을 달래는 동시에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세워 이 지역을 프랑크 왕국으로 흡수하고자 했다. 한편 아키텐을 통치하다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루도비쿠스 1세가 수차례에 걸쳐 상속령을 개정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아들들이 831년부터 본격적인 반란을 일으켰다. 카롤루스 왕가의 내부 갈등은 아키텐에서 가장 첨예하게 드러났으며 수십 년에 걸친 내전 끝에 카롤루스 대머리왕이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했다. 서프랑크 왕이 된 그는 자신의 아들을 아키텐 국왕으로 임명했지만 강력한 중앙집권정책을 추진하면서 아키텐 왕국의 모든 권력을 독점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통치 수단을 확보하지 못하고 아키텐 귀족들이 이 같은 지배 방식에 반기를 들면서 카롤루스 왕권은 9세기 말부터 급격하게 해체되었다.\u0000아키텐의 강력한 귀족들은 왕권이 약화된 틈을 이용하여 다수의 백령들로 이루어진 ‘제후령’을 만들었다. 원래 카롤루스 왕가로부터 관직과 토지를 받고 왕을 대신했던 이들은 9세기 후반부터 왕권을 마음대로 사용하면서 영향력을 확장했으며,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기존의 백령을 여러 개로 분할하고 ‘부백’을 대리인으로 임명했다. 9세기 말 경건공 기욤은 광대한 아키텐 공국을 수립했으며 카롤루스 대머리왕의 충신이었던 일드베르를 최초의 리모주 부백으로 임명하고 해당 지역을 관리토록 했다. 한편 10세기 초부터 푸아티에 백들이 오베르뉴 세력을 리무쟁에서 몰아내고 리모주 부백들을 지배했지만 지리적ㆍ정치적으로 제한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원활한 통치를 위해 오히려 부백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오베르뉴 및 푸아티에 백들로부터 부여받은 권위와 토지를 권력의 기반으로 삼았던 리모주 부백들은 결혼을 통해 리무쟁의 강력한 귀족들과 관계를 맺고 가산을 증대시키면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확장해나갔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리무쟁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PeriodicalId":398497,"journal":{"name":"SA-CHONG(sa)","volume":"48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1900-01-0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3554986","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