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ŏnghoe和“人类发展:未实现的倡议”

SangHyu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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摘要

尽管联合国雄心勃勃地宣布20世纪60年代将成为“发展时代”(Development Decade),但进入20世纪60年代中后期,对以工业化和经济增长为核心的“发展”模式的怀疑呼声越来越高。因为虽然全世界广泛推进发展规划,但全球南半球的贫困、城乡差距、贫富差距以及南半球和北半球的差距反而加深。1967年教宗保罗六世发表的会规《民族的发展》就是对这种状况的回应。《各民族的发展》是被埋在追求利润和自由竞争中的现有的发展轨迹斥责,贫穷和受压迫的人真正实现人性化生活下去的“人类发展”的愿景,以对抗主流发展模式提出替代方案谋求发展的潮流注入力量。此后,“人类发展论”通过拉丁美洲主教会议、教皇厅正义和平委员会和世界教会理事会(WCC)组成的社会·发展与和平委员会(SODEPAX, Committee on Society, Development and Peace)的活动、“解放神学”的诞生等一系列过程进一步扩散。1975年在韩国天主教主教会议旗下成立的“仁成会”,从“Human Development Committee”的英文名称中可以看出,是以人类发展蓝图为基础的组织。但是,20世纪70年代中后期和80年代不仅对天主教界,而且对整个韩国劳动、农民、城市贫民运动的活性化做出巨大贡献的仁成会在阐明人类发展的替代飞跃方面存在局限性。本论文将观察仁成会成立并展开活动的过程,并研究虽然具有主教会下属机构的地位,但仁成会为人类发展做出的努力为何停留在未完成的企划上。
本文章由计算机程序翻译,如有差异,请以英文原文为准。
Insŏnghoe(仁成會) and ‘Human Development’: The Unfulfilled Initiative
1960년대가 ‘발전의 시대’(Development Decade)가 되리라는 UN의 야심 찬 선언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핵심으로 하는 ‘발전’ 패러다임에 대한 회의의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전세계적으로 발전 기획이 광범하게 추진되었지만, 글로벌 남반구의 빈곤, 도시-농촌 격차, 빈부격차, 그리고 남반구-북반구의 간극은 오히려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1967년 교종 바오로 6세가 발표한 회칙 「민족들의 발전」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응답이었다. 「민족들의 발전」은 이윤추구와 자유경쟁에 매몰된 기존의 발전 궤적을 질타하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이 참다운 인간적 삶을 실현해나가는 ‘인간적 발전’의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주류적 발전패러다임에 대항해 대안적 발전을 모색하는 흐름에 힘을 실어주었다. 인간적 발전 담론은 이후 메데인(Medellín)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와 세계교회협의회(WCC)가 구성한 사회·개발·평화위원회(SODEPAX, Committee on Society, Development and Peace)의 활동, ‘해방신학’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더욱 확산된다. 1975년 한국 가톨릭 주교회의 산하에 설립된 ‘인성회’(仁成會)는 Human Development Committee라는 영문 명칭이 보여주듯이 인간적 발전의 비전에 기반한 조직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후반과 1980년대 가톨릭계뿐 아니라 한국 노동·농민·도시빈민운동 전반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인성회는 정작 인간적 발전의 대안적 비전을 설파하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본 논문은 인성회가 설립되고 활동을 전개해나간 과정을 살펴보고, 주교회의 산하 기구라는 위상을 지녔음에도 인간적 발전을 위한 인성회의 노력이 왜 미완의 기획에 머물게 되었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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