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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s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registered as UNESCO Memory of the World Register
동학농민혁명 당시에 생산된 기록물이 지난 5월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6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로써 동학농민혁명은 전 세계로부터 폭압적인 왕정 체제를 전복시키고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는 인내천 세상을 만들고자 민초들이 들고 일어난 위대한 혁명이었음이 공인된 것이다. 우리는 동학농민혁명의 기록물이 등재됨으로써 18종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에서 전 세계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그 사건의 중요도를 판단해 당시 생산된 기록물을 선별 인증함으로써 전 인류가 기록물의 가치를 공유하고 이를 잘 보존해 후손에게 전하고자 하는 사업이다. 2015년부터 동학농민혁명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한 기구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2023년 드디어 등재가 완료되었다. 이로써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은 부패한 지도층에 저항하고 외세의 침략에 반대하며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민중이 봉기한 사건이라는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한편 동학농민혁명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인간의 권리와 평등, 식민주의에 대한 반대 그리고 민주주의 추구라는 근대적 보편 가치를 공인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앞으로 추가될 기록물들과 함께 등재 과정에 문제가 되었던 부분들에 대한 재검증이다. 동학혁명이냐 아니면 동학운동이냐에서부터 1894년 동학군들의 행동에 동경대전과 용담유사가 미친 영향은 어디까지로 보아야 할 것인가, 사발통문의 진위 논쟁 그리고 동학혁명과 3.1혁명의 연관성 등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재개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