所谓文学的过家家游戏:金东仁初期文艺论再读

박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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摘要

这篇文章为了从微观的角度研究1920年前后发生的文艺讨论的变化,查看了金东仁的初期短篇小说和文艺杂志《创造》。这一时期文艺讨论改编过程中具有特征的情况是,有意摆脱文学要再现现实的强迫。为了摆脱文学必须再现现实的强迫,需要从文学文本的共同素质——语言的构成形态本身寻找“文学性”,即“美”。通过语言体现“美”这一抽象理念的工作并不仅仅在写小说或诗的层次上进行。这反而是从个别文本中寻找“美”,是特定读书的产物。与此相关,金东仁曾要求读者“找出文本中没有提到的话,作者还没有说完的话”。但是,如果这一要求能够适用于所有文本,那么“作者没有说的话”就不是在文本中寻找,而是通过读书和解释产生。通过读书和解释产生的“作者没能说的话”被等同于文本的文学意义,甚至是包含在文本中的“美”。读者要想找到它,就要考虑诗学知识和做法知识。在这一点上,金东仁的写作和在《创造》中的文艺讨论中展开的文学运动是一种规律化。但这一规律也推动了对文本的无休止的重写。因为解释的正当性来自于先于文本的规则,所以解释反而不会被文本文中的内容和作者的意图所束缚。这样就可以形成封闭、自我完结的文艺讨论循环。从这一点看,20世纪20年代的文艺讨论从本质上可以说是构建了作者和读者之间的对话关系。这一时期,包括金东仁在内的文艺同志人笔者反复点名读者也与此有关。他们要求的并不是从事文学,写文学文章,而是接近于有人以文学固有的方式读自己的文章。
本文章由计算机程序翻译,如有差异,请以英文原文为准。
문학이라는 소꿉놀이: 김동인 초기 문예론 재독
이 글은 1920년을 전후해 일어난 문예담론의 변화 양상을 보다 미시적 차원에서 검토하기 위해 김동인의 초기 단편과 문예지 『창조』를 살펴보았다. 이 시기 문예담론 재편 과정에서의 특징적인 양상은 문학이 현실을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려 했다는 점이다. 문학이 현실을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문학 텍스트에 공통적인 자질인 언어의 구성 양상 자체로부터 ‘문학성’, 즉 ‘미’를 찾아내는 작업이었다. ‘미’라는 추상적 이념을 언어를 통해 구현하는 작업은 소설이나 시를 쓰는 층위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는 개별 텍스트들로부터 ‘미’를 찾아내는, 특정한 독서의 산물이었다. 김동인은 이와 관련해 ‘텍스트에 제시되지 않은 말, 저자가 채 하지 못한 말을 찾아달라’고 독자에게 요청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요구가 모든 텍스트에 대해 적용될 수 있다면, 결국 ‘저자가 하지 못한 말’은 텍스트에서 찾는 것이라기보다는 독서와 해석을 통해 생성되는 것이다. 독서와 해석을 통해 생산되는 ‘저자가 하지 못한 말’은 텍스트의 문학적 의미, 나아가 텍스트에 함축된 ‘미’와 동일시된다. 독자는 이를 찾기 위해 시학적 지식을, 작법에 대한 지식을 고려해야 한다. 이 점에서, 김동인의 글쓰기와 『창조』에서의 문예담론에서 전개된 문학운동은 일종의 규율화이다. 그러나 이 규율화는 또한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시 쓰기를 추동했던 것이기도 하다. 해석의 정당성이 텍스트에 선행하는 규칙에서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해석은 텍스트의 문면에 적힌 내용에, 그리고 저자의 의도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이로써 폐쇄적이고 자기완결적인 문예담론의 순환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1920년대 문예담론은 본질적으로 저자와 독자 사이의 대화적 관계의 구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김동인을 비롯한 문예동인지 필자들이 반복해서 독자를 호명했던 것 역시 이와 관련된다. 이들이 요구했던 것은 그저 문학에 종사하는 것, 문학적인 글을 쓰는 것이었다기보다는, 누군가 자신의 글을, 문학에 고유한 방식으로 읽어주는 것에 가까웠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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