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所谓文学的过家家游戏:金东仁初期文艺论再读","authors":"박재익","doi":"10.35419/KMLIT.2019..67.003","DOIUrl":null,"url":null,"abstract":"이 글은 1920년을 전후해 일어난 문예담론의 변화 양상을 보다 미시적 차원에서 검토하기 위해 김동인의 초기 단편과 문예지 『창조』를 살펴보았다. 이 시기 문예담론 재편 과정에서의 특징적인 양상은 문학이 현실을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려 했다는 점이다. 문학이 현실을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문학 텍스트에 공통적인 자질인 언어의 구성 양상 자체로부터 ‘문학성’, 즉 ‘미’를 찾아내는 작업이었다. ‘미’라는 추상적 이념을 언어를 통해 구현하는 작업은 소설이나 시를 쓰는 층위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는 개별 텍스트들로부터 ‘미’를 찾아내는, 특정한 독서의 산물이었다.\n김동인은 이와 관련해 ‘텍스트에 제시되지 않은 말, 저자가 채 하지 못한 말을 찾아달라’고 독자에게 요청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요구가 모든 텍스트에 대해 적용될 수 있다면, 결국 ‘저자가 하지 못한 말’은 텍스트에서 찾는 것이라기보다는 독서와 해석을 통해 생성되는 것이다. 독서와 해석을 통해 생산되는 ‘저자가 하지 못한 말’은 텍스트의 문학적 의미, 나아가 텍스트에 함축된 ‘미’와 동일시된다. 독자는 이를 찾기 위해 시학적 지식을, 작법에 대한 지식을 고려해야 한다. 이 점에서, 김동인의 글쓰기와 『창조』에서의 문예담론에서 전개된 문학운동은 일종의 규율화이다. 그러나 이 규율화는 또한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시 쓰기를 추동했던 것이기도 하다. 해석의 정당성이 텍스트에 선행하는 규칙에서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해석은 텍스트의 문면에 적힌 내용에, 그리고 저자의 의도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다.\n이로써 폐쇄적이고 자기완결적인 문예담론의 순환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1920년대 문예담론은 본질적으로 저자와 독자 사이의 대화적 관계의 구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김동인을 비롯한 문예동인지 필자들이 반복해서 독자를 호명했던 것 역시 이와 관련된다. 이들이 요구했던 것은 그저 문학에 종사하는 것, 문학적인 글을 쓰는 것이었다기보다는, 누군가 자신의 글을, 문학에 고유한 방식으로 읽어주는 것에 가까웠던 셈이다.","PeriodicalId":187029,"journal":{"name":"Journal of Korean Modern Literature","volume":"12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19-02-0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title\":\"문학이라는 소꿉놀이: 김동인 초기 문예론 재독\",\"authors\":\"박재익\",\"doi\":\"10.35419/KMLIT.2019..67.003\",\"DOIUrl\":null,\"url\":null,\"abstract\":\"이 글은 1920년을 전후해 일어난 문예담론의 변화 양상을 보다 미시적 차원에서 검토하기 위해 김동인의 초기 단편과 문예지 『창조』를 살펴보았다. 이 시기 문예담론 재편 과정에서의 특징적인 양상은 문학이 현실을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려 했다는 점이다. 문학이 현실을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문학 텍스트에 공통적인 자질인 언어의 구성 양상 자체로부터 ‘문학성’, 즉 ‘미’를 찾아내는 작업이었다. ‘미’라는 추상적 이념을 언어를 통해 구현하는 작업은 소설이나 시를 쓰는 층위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는 개별 텍스트들로부터 ‘미’를 찾아내는, 특정한 독서의 산물이었다.\\n김동인은 이와 관련해 ‘텍스트에 제시되지 않은 말, 저자가 채 하지 못한 말을 찾아달라’고 독자에게 요청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요구가 모든 텍스트에 대해 적용될 수 있다면, 결국 ‘저자가 하지 못한 말’은 텍스트에서 찾는 것이라기보다는 독서와 해석을 통해 생성되는 것이다. 독서와 해석을 통해 생산되는 ‘저자가 하지 못한 말’은 텍스트의 문학적 의미, 나아가 텍스트에 함축된 ‘미’와 동일시된다. 독자는 이를 찾기 위해 시학적 지식을, 작법에 대한 지식을 고려해야 한다. 이 점에서, 김동인의 글쓰기와 『창조』에서의 문예담론에서 전개된 문학운동은 일종의 규율화이다. 그러나 이 규율화는 또한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시 쓰기를 추동했던 것이기도 하다. 해석의 정당성이 텍스트에 선행하는 규칙에서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해석은 텍스트의 문면에 적힌 내용에, 그리고 저자의 의도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다.\\n이로써 폐쇄적이고 자기완결적인 문예담론의 순환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1920년대 문예담론은 본질적으로 저자와 독자 사이의 대화적 관계의 구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김동인을 비롯한 문예동인지 필자들이 반복해서 독자를 호명했던 것 역시 이와 관련된다. 이들이 요구했던 것은 그저 문학에 종사하는 것, 문학적인 글을 쓰는 것이었다기보다는, 누군가 자신의 글을, 문학에 고유한 방식으로 읽어주는 것에 가까웠던 셈이다.\",\"PeriodicalId\":187029,\"journal\":{\"name\":\"Journal of Korean Modern Literature\",\"volume\":\"12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19-02-0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Journal of Korean Modern Literature\",\"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35419/KMLIT.2019..67.003\",\"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Journal of Korean Modern Literature","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35419/KMLIT.2019..67.003","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이 글은 1920년을 전후해 일어난 문예담론의 변화 양상을 보다 미시적 차원에서 검토하기 위해 김동인의 초기 단편과 문예지 『창조』를 살펴보았다. 이 시기 문예담론 재편 과정에서의 특징적인 양상은 문학이 현실을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려 했다는 점이다. 문학이 현실을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문학 텍스트에 공통적인 자질인 언어의 구성 양상 자체로부터 ‘문학성’, 즉 ‘미’를 찾아내는 작업이었다. ‘미’라는 추상적 이념을 언어를 통해 구현하는 작업은 소설이나 시를 쓰는 층위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는 개별 텍스트들로부터 ‘미’를 찾아내는, 특정한 독서의 산물이었다.
김동인은 이와 관련해 ‘텍스트에 제시되지 않은 말, 저자가 채 하지 못한 말을 찾아달라’고 독자에게 요청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요구가 모든 텍스트에 대해 적용될 수 있다면, 결국 ‘저자가 하지 못한 말’은 텍스트에서 찾는 것이라기보다는 독서와 해석을 통해 생성되는 것이다. 독서와 해석을 통해 생산되는 ‘저자가 하지 못한 말’은 텍스트의 문학적 의미, 나아가 텍스트에 함축된 ‘미’와 동일시된다. 독자는 이를 찾기 위해 시학적 지식을, 작법에 대한 지식을 고려해야 한다. 이 점에서, 김동인의 글쓰기와 『창조』에서의 문예담론에서 전개된 문학운동은 일종의 규율화이다. 그러나 이 규율화는 또한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시 쓰기를 추동했던 것이기도 하다. 해석의 정당성이 텍스트에 선행하는 규칙에서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해석은 텍스트의 문면에 적힌 내용에, 그리고 저자의 의도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이로써 폐쇄적이고 자기완결적인 문예담론의 순환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1920년대 문예담론은 본질적으로 저자와 독자 사이의 대화적 관계의 구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김동인을 비롯한 문예동인지 필자들이 반복해서 독자를 호명했던 것 역시 이와 관련된다. 이들이 요구했던 것은 그저 문학에 종사하는 것, 문학적인 글을 쓰는 것이었다기보다는, 누군가 자신의 글을, 문학에 고유한 방식으로 읽어주는 것에 가까웠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