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朝鲜17~18世纪白瓷圆形壶的造型与性质","authors":"김규림","doi":"10.17792/KCS.2019.36..153","DOIUrl":null,"url":null,"abstract":"17세기 이후 상부와 하부를 접합해 제작한 백자원호는 동체의 단면이 옆으로 벌어진 주판알 형태부터 장원형까지 다양하다. 이 항아리들은 모두 백자 달항아리라고 불리는 달과 같은 원형 항아리와 동일한 제작방법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유사한 조형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근대기 이후 백자 달항아리로 지칭되는 백자원호는 주로 심미적 측면에 대한 논의만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백자원호의 조형 특징과 제작 당시의 성격을 살펴 기존에 확립된 범위를 확장하고, 제작 당시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했다.\n17세기 이후 제작된 백자원호는 동일한 크기의 발 두 개를 위·아래로 이어 붙여 제작하였다. 이 기술은 이미 15~16세기부터 조선에서 항아리를 제작할때 활용하였는데, 반드시 대형 기물을 만들 때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백자원호는 두 개의 발을 이어 붙인 뒤, 굽과 구연을 따로 깎아낸다. 그래서 구연의 내측선은 모두 사선으로 외반하며, 외측선은 각이 지거나 곧게 직립한다. 주로 각이 진 구연은 무문백자와 철화로 시문한 것이 함께 나타나는데 이는 17세기 전반부터 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직립한 구연은 모두 무문백자로 이루어졌으며, 대체로 18세기 전반기 이후에 나타나는 조형 특징을 보인다.\n한편 현재 전해지는 백자원호 중에는 「웃밧쇼」, 「연령군 겻쥬방」과 같이 왕실 주방을 의미하는 한글 명문이 바닥면에 새겨진 것도 있다. 이를 통해 추정만 이루어지던 백자원호의 용도와 성격을 좀 더 명확히 규명하였다.","PeriodicalId":149053,"journal":{"name":"The Korean Cultural Studies","volume":"1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19-06-0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title\":\"조선 17~18세기 백자원호(白磁圓壺)의 조형과 성격\",\"authors\":\"김규림\",\"doi\":\"10.17792/KCS.2019.36..153\",\"DOIUrl\":null,\"url\":null,\"abstract\":\"17세기 이후 상부와 하부를 접합해 제작한 백자원호는 동체의 단면이 옆으로 벌어진 주판알 형태부터 장원형까지 다양하다. 이 항아리들은 모두 백자 달항아리라고 불리는 달과 같은 원형 항아리와 동일한 제작방법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유사한 조형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근대기 이후 백자 달항아리로 지칭되는 백자원호는 주로 심미적 측면에 대한 논의만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백자원호의 조형 특징과 제작 당시의 성격을 살펴 기존에 확립된 범위를 확장하고, 제작 당시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했다.\\n17세기 이후 제작된 백자원호는 동일한 크기의 발 두 개를 위·아래로 이어 붙여 제작하였다. 이 기술은 이미 15~16세기부터 조선에서 항아리를 제작할때 활용하였는데, 반드시 대형 기물을 만들 때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백자원호는 두 개의 발을 이어 붙인 뒤, 굽과 구연을 따로 깎아낸다. 그래서 구연의 내측선은 모두 사선으로 외반하며, 외측선은 각이 지거나 곧게 직립한다. 주로 각이 진 구연은 무문백자와 철화로 시문한 것이 함께 나타나는데 이는 17세기 전반부터 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직립한 구연은 모두 무문백자로 이루어졌으며, 대체로 18세기 전반기 이후에 나타나는 조형 특징을 보인다.\\n한편 현재 전해지는 백자원호 중에는 「웃밧쇼」, 「연령군 겻쥬방」과 같이 왕실 주방을 의미하는 한글 명문이 바닥면에 새겨진 것도 있다. 이를 통해 추정만 이루어지던 백자원호의 용도와 성격을 좀 더 명확히 규명하였다.\",\"PeriodicalId\":149053,\"journal\":{\"name\":\"The Korean Cultural Studies\",\"volume\":\"1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19-06-0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The Korean Cultural Studies\",\"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17792/KCS.2019.36..153\",\"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The Korean Cultural Studies","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17792/KCS.2019.36..153","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17세기 이후 상부와 하부를 접합해 제작한 백자원호는 동체의 단면이 옆으로 벌어진 주판알 형태부터 장원형까지 다양하다. 이 항아리들은 모두 백자 달항아리라고 불리는 달과 같은 원형 항아리와 동일한 제작방법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유사한 조형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근대기 이후 백자 달항아리로 지칭되는 백자원호는 주로 심미적 측면에 대한 논의만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백자원호의 조형 특징과 제작 당시의 성격을 살펴 기존에 확립된 범위를 확장하고, 제작 당시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했다.
17세기 이후 제작된 백자원호는 동일한 크기의 발 두 개를 위·아래로 이어 붙여 제작하였다. 이 기술은 이미 15~16세기부터 조선에서 항아리를 제작할때 활용하였는데, 반드시 대형 기물을 만들 때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백자원호는 두 개의 발을 이어 붙인 뒤, 굽과 구연을 따로 깎아낸다. 그래서 구연의 내측선은 모두 사선으로 외반하며, 외측선은 각이 지거나 곧게 직립한다. 주로 각이 진 구연은 무문백자와 철화로 시문한 것이 함께 나타나는데 이는 17세기 전반부터 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직립한 구연은 모두 무문백자로 이루어졌으며, 대체로 18세기 전반기 이후에 나타나는 조형 특징을 보인다.
한편 현재 전해지는 백자원호 중에는 「웃밧쇼」, 「연령군 겻쥬방」과 같이 왕실 주방을 의미하는 한글 명문이 바닥면에 새겨진 것도 있다. 이를 통해 추정만 이루어지던 백자원호의 용도와 성격을 좀 더 명확히 규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