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Historical Research of the Performances of Korean Traditional Folk Songs at National Gugak Center","authors":"In-hwa So","doi":"10.56100/kfs.2023.8.68.7","DOIUrl":null,"url":null,"abstract":"이 글은 국가 공연기관인 국립국악원에서 민요공연이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국악원은 1951 년 개원한 후 조선시대 장악원을 통해 전승된 궁중음악, 정악을 중심으로 민속악을 수용했다. 이후 국악원의 옴니버스식 공연에 민요는 대개 빠짐없이 들어 있었다. 개원 초창기 ‘국악감상회’, 무형문화재 공연에서는 경서도 명창들이 주로 공연했는데, 통속민요와 잡가가 주로 불렸다. 특히 무형문화재 제도 수립 이후, 국악원에서 개최하게 된 무형문화재 공연은 민속 악연주단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민속악단을 창단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1년 민속악단 창단 이후에는 경서도 단원들의 소리 뿐 아니라 남도민요를 포함하여 민요공연의 폭이 확대되었다.BR 2000년대 무렵 국악원은 민요를 대중화하고 국악원 민속악단을 국립극장 창극단과 차별화하고자 경서도소리극을 제작했다. 〈시집가는 날〉로 대표되는 경서도소리극은 성황을 이루었으며, 외부 민요계에도 영향을 주어 국악 공연의 다양성을 확대했다고 평가된다. 국악원의 소리극은 경서도소리극으로부터 이후 판소리 등 각종 성악을 포괄하는 소리극과 음악극 방향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 국악원 민속악단 단원을 민속악단 초기와 비교할 때 남도 계통 인원만 증가한 것과 일치한다. 국악원은 이러한 인적 구성의 조건 속에서 국악 대중화를 위해 정악과 민속악을 함께 하며 연극, 영화, 뮤지컬 등 다른 장르와 협업을 시도했다. 한편, 서울 국악원의 교육사업과 창작악단 창단 그리고 지역 국악원 개원으로 민요에 기반한 동요, 창작 관현악 공연, 향토민요의 무대화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BR 국악원은 개원 이후 국악계의 종가로서 무형문화재 공연과 소리극 개발, 지역 공연 활동으로 민요를 전승하고 보급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시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PeriodicalId":122626,"journal":{"name":"The Korean Folk song","volume":"9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The Korean Folk song","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56100/kfs.2023.8.68.7","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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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글은 국가 공연기관인 국립국악원에서 민요공연이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국악원은 1951 년 개원한 후 조선시대 장악원을 통해 전승된 궁중음악, 정악을 중심으로 민속악을 수용했다. 이후 국악원의 옴니버스식 공연에 민요는 대개 빠짐없이 들어 있었다. 개원 초창기 ‘국악감상회’, 무형문화재 공연에서는 경서도 명창들이 주로 공연했는데, 통속민요와 잡가가 주로 불렸다. 특히 무형문화재 제도 수립 이후, 국악원에서 개최하게 된 무형문화재 공연은 민속 악연주단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민속악단을 창단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1년 민속악단 창단 이후에는 경서도 단원들의 소리 뿐 아니라 남도민요를 포함하여 민요공연의 폭이 확대되었다.BR 2000년대 무렵 국악원은 민요를 대중화하고 국악원 민속악단을 국립극장 창극단과 차별화하고자 경서도소리극을 제작했다. 〈시집가는 날〉로 대표되는 경서도소리극은 성황을 이루었으며, 외부 민요계에도 영향을 주어 국악 공연의 다양성을 확대했다고 평가된다. 국악원의 소리극은 경서도소리극으로부터 이후 판소리 등 각종 성악을 포괄하는 소리극과 음악극 방향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 국악원 민속악단 단원을 민속악단 초기와 비교할 때 남도 계통 인원만 증가한 것과 일치한다. 국악원은 이러한 인적 구성의 조건 속에서 국악 대중화를 위해 정악과 민속악을 함께 하며 연극, 영화, 뮤지컬 등 다른 장르와 협업을 시도했다. 한편, 서울 국악원의 교육사업과 창작악단 창단 그리고 지역 국악원 개원으로 민요에 기반한 동요, 창작 관현악 공연, 향토민요의 무대화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BR 국악원은 개원 이후 국악계의 종가로서 무형문화재 공연과 소리극 개발, 지역 공연 활동으로 민요를 전승하고 보급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시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