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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훈민정음』 이 반포된 뒤에 다양한 고전의 언해본이 간행되면서 중국의 대표적인 시인 杜甫의 시집이 왕명에 의해 25권 17책으로 언해 간행되었다. 그러나 李白 시 언해는 간행된 기록이 없었다. 홍윤표 교수가 1978년 전주의 한 고문헌 수집상에게서 우연히 구입하여 소장하였던 필사본 『李白七言』 은 ‘李白七言’ ‘遺響’ ‘李白古風’의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백의 시 76수를 포함하여 총 148수가 한글로 번역되고 주석까지 실려 있다. 필사본으로만 전해 진 것을 보면 왕명에 의해 언해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언해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다양한 고문헌을 검색한 결과, 鰲川 韓伯愈(1675-1742)의 연보에서 56세에 『唐音』 을 언해하고, 57세에 『李白七言』 을 언해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의 출생지인 泰仁 古縣 內는 전주의 고문헌 수집상이 필사본 『이백칠언』 을 처음 구입한 井邑 지역이며, 그는 『韻解 訓民正音』 을 지은 문자학자 申景濬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가 신경준에게 가르친 내용이 이 언해본에 그대로 실려 있으므로, 한백유가 『李白七言』 언해의 저자라는 사실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