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Aspects and Embodiments of Records on Naturalized Persons in Korea Traditional Era","authors":"Jinok Kwon","doi":"10.33335/kll.98.1","DOIUrl":null,"url":null,"abstract":"이 논문은 전통 시대 우리나라 귀화인(歸化人)에 대한 기록 양상을 문인 지식인이 남긴 개인 문집에서 확인하고, 기록의 성격별로 문학적 형상화 특징을 고찰한 글이다. ‘한국문집총간 편목색인’을 활용하여 귀화인만을 따로 추출하여 분류하였고, 또한 해당 귀화인을 대상으로 창작된 각종 문학 작품들과 이것이 수록된 문집과 작가 정보를 정리하였는데, 주요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중국의 송원(宋元) 및 명청(明淸) 교체기, 우리나라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전후 시기에 많은 귀화인이 분포되어 있다. 귀화한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은 기록 양상을 보이는 경우는 강세작(康世爵)이다. 8세기부터 18세기까지 활동한 귀화인에 대한 기록물들이 모두 18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고 이 기록물이 개인 문집의 성격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귀화인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은 18세기 이후의 문인 지식인들에 의해 대거 창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록물의 성격에 따라 그 형상화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애제류(哀祭類)이다. 이지란(李之蘭)을 위해 지은 정조(正祖)의 제문은 주요한 사실과 정황을 한두 구절로 함축적으로 서술하는가 하면, 조선 개국 공신으로서 이지란의 위상과 절의를 형상화하여 그의 영령이 생부의 무덤을 영원히 호위하며 지켜 주기를 당부하는 것을 주제로 삼았다. 정조나 김매순(金邁淳)의 제문처럼 귀화인이라는 정보를 누락하는 경우도 있고, 남몽뢰의 제문처럼 주요하게 다루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작자의 상황과 선택에 따른 것이다. 다음은 전장류(傳狀類)이다. 귀화인을 대상을 쓴 전기체 중 장르적 전형을 잘 갖추고 있는 작품으로 홍직필(洪直弼)의 「청계주공소전(淸溪朱公小傳)」을 꼽을 수 있다. 이 글은 주잠(朱潛)의 가계와 생애, 후손들 가운데 특기할 만한 에피소드, 집필자의 사평(史評)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후손들의 에피소드를 통해서는 우리나라로 귀화한 주희(朱熹) 후손들의 모습을 우월하게 형상화하고 있으며, 사평을 통해서도 역시 정통적인 중화 사상과 문화를 견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주희 후손들을 중국의 후손들보다 돋보이게 형상화함으로써 문화적 우월성을 확인하고 있다. 마지막은 비지류(碑誌類)이다. 여러 문체의 묘도문자 가운데 전호겸(田好謙)을 묘주(墓主)로 하고 있는 최석정(崔錫鼎)의 묘갈명(墓碣銘)을 살펴보았다. 묘도문자의 전형을 잘 갖추고 있는데, 묘주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귀화인이기 때문에 귀화하기 이전의 출신과 가계에 대한 정보가 제시되고, 귀화하는 과정과 귀화한 이후 삶의 궤적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한 편의 묘도문자를 갈무리하는 명(銘)을 통해서 묘주가 중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영토에 우리나라로 귀화한 중국 사람의 무덤이 존재하고 또 잘 보전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려는 의도인 셈이다. 동일한 묘주를 대상으로 지은 박세채(朴世采)의 명에서도 귀화인을 예우하는 자국민의 인간적인 면모와 중화의 정통을 지키는 자국 문화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PeriodicalId":483983,"journal":{"name":"Eo'mun nonjib","volume":"49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Eo'mun nonjib","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33335/kll.98.1","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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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논문은 전통 시대 우리나라 귀화인(歸化人)에 대한 기록 양상을 문인 지식인이 남긴 개인 문집에서 확인하고, 기록의 성격별로 문학적 형상화 특징을 고찰한 글이다. ‘한국문집총간 편목색인’을 활용하여 귀화인만을 따로 추출하여 분류하였고, 또한 해당 귀화인을 대상으로 창작된 각종 문학 작품들과 이것이 수록된 문집과 작가 정보를 정리하였는데, 주요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중국의 송원(宋元) 및 명청(明淸) 교체기, 우리나라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전후 시기에 많은 귀화인이 분포되어 있다. 귀화한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은 기록 양상을 보이는 경우는 강세작(康世爵)이다. 8세기부터 18세기까지 활동한 귀화인에 대한 기록물들이 모두 18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고 이 기록물이 개인 문집의 성격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귀화인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은 18세기 이후의 문인 지식인들에 의해 대거 창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록물의 성격에 따라 그 형상화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애제류(哀祭類)이다. 이지란(李之蘭)을 위해 지은 정조(正祖)의 제문은 주요한 사실과 정황을 한두 구절로 함축적으로 서술하는가 하면, 조선 개국 공신으로서 이지란의 위상과 절의를 형상화하여 그의 영령이 생부의 무덤을 영원히 호위하며 지켜 주기를 당부하는 것을 주제로 삼았다. 정조나 김매순(金邁淳)의 제문처럼 귀화인이라는 정보를 누락하는 경우도 있고, 남몽뢰의 제문처럼 주요하게 다루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작자의 상황과 선택에 따른 것이다. 다음은 전장류(傳狀類)이다. 귀화인을 대상을 쓴 전기체 중 장르적 전형을 잘 갖추고 있는 작품으로 홍직필(洪直弼)의 「청계주공소전(淸溪朱公小傳)」을 꼽을 수 있다. 이 글은 주잠(朱潛)의 가계와 생애, 후손들 가운데 특기할 만한 에피소드, 집필자의 사평(史評)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후손들의 에피소드를 통해서는 우리나라로 귀화한 주희(朱熹) 후손들의 모습을 우월하게 형상화하고 있으며, 사평을 통해서도 역시 정통적인 중화 사상과 문화를 견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주희 후손들을 중국의 후손들보다 돋보이게 형상화함으로써 문화적 우월성을 확인하고 있다. 마지막은 비지류(碑誌類)이다. 여러 문체의 묘도문자 가운데 전호겸(田好謙)을 묘주(墓主)로 하고 있는 최석정(崔錫鼎)의 묘갈명(墓碣銘)을 살펴보았다. 묘도문자의 전형을 잘 갖추고 있는데, 묘주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귀화인이기 때문에 귀화하기 이전의 출신과 가계에 대한 정보가 제시되고, 귀화하는 과정과 귀화한 이후 삶의 궤적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한 편의 묘도문자를 갈무리하는 명(銘)을 통해서 묘주가 중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영토에 우리나라로 귀화한 중국 사람의 무덤이 존재하고 또 잘 보전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려는 의도인 셈이다. 동일한 묘주를 대상으로 지은 박세채(朴世采)의 명에서도 귀화인을 예우하는 자국민의 인간적인 면모와 중화의 정통을 지키는 자국 문화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