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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1970년대 텔레비전의 등장과 함께 영화와 라디오는 올드 미디어로서 위기를 겪게 된다. 30~40대 이상이 텔레비전 수상기로 이동하자 라디오와 영화는 새로운 관객층을 발견하게 되는데 청바지 입은 10~20대의 청년층이었다. 라디오는 심야 음악방송으로, 극장은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청년(대학생) 영화로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고자 했다. 1970년대 중반 한국영화는 국가의 새로운 영화시책에 부응하는 한편 새로운 관객들의 기호와 취향을 적극 반영하여 제작되었다. 월간 《영화》의 단신기사를 살펴보면 이 시기 “음악영화”, “뮤지컬”, “세미 뮤지컬”로 명명된 채 제작된 다수의 영화를 확인할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아마추어 청년 뮤지션 및 이들의 표상을 활용하여 젊은 세대의 모럴, 음악적 취향과 정서를 반영한 포크ㆍ록 음악영화들이 다수 등장했다. 본 연구는 이들을 기존의 음악영화와 변별되는 ‘청년 음악영화’로 분류하여 그 전개 과정에 주목한다. 청년 음악영화 속 초창기 명랑한 대학생 혹은 ‘교정 가능한 청년’ 표상은 점차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방치된 재수생, 낙오자 등 비주류 청년들의 표상으로 전이되어 갔다. 청년 음악영화에서 음악은 영화에 분위기를 조성하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서 서사의 연결에 기여하여 내러티브에 통일성을 주고, 청각적 몽타주의 기능을 수행하는 등 영화의 주제와 미학에 상당히 기여했다. 이러한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청년 음악영화는 1975년 동시적으로 일어난 긴급조치 9호 발동 및 대중문화 연예인 대마초 파동, 대중가요 금지곡 발표 등으로 변곡점을 경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