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ange of Senses, the Development of ‘Korean Youth Music Films’ in the mid-1970s

Eo'mun nonjib Pub Date : 2023-08-31 DOI:10.33335/kll.98.5
Hyo Joung Song
{"title":"The Change of Senses, the Development of ‘Korean Youth Music Films’ in the mid-1970s","authors":"Hyo Joung Song","doi":"10.33335/kll.98.5","DOIUrl":null,"url":null,"abstract":"1970년대 텔레비전의 등장과 함께 영화와 라디오는 올드 미디어로서 위기를 겪게 된다. 30~40대 이상이 텔레비전 수상기로 이동하자 라디오와 영화는 새로운 관객층을 발견하게 되는데 청바지 입은 10~20대의 청년층이었다. 라디오는 심야 음악방송으로, 극장은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청년(대학생) 영화로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고자 했다. 1970년대 중반 한국영화는 국가의 새로운 영화시책에 부응하는 한편 새로운 관객들의 기호와 취향을 적극 반영하여 제작되었다. 월간 《영화》의 단신기사를 살펴보면 이 시기 “음악영화”, “뮤지컬”, “세미 뮤지컬”로 명명된 채 제작된 다수의 영화를 확인할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아마추어 청년 뮤지션 및 이들의 표상을 활용하여 젊은 세대의 모럴, 음악적 취향과 정서를 반영한 포크ㆍ록 음악영화들이 다수 등장했다. 본 연구는 이들을 기존의 음악영화와 변별되는 ‘청년 음악영화’로 분류하여 그 전개 과정에 주목한다. 청년 음악영화 속 초창기 명랑한 대학생 혹은 ‘교정 가능한 청년’ 표상은 점차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방치된 재수생, 낙오자 등 비주류 청년들의 표상으로 전이되어 갔다. 청년 음악영화에서 음악은 영화에 분위기를 조성하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서 서사의 연결에 기여하여 내러티브에 통일성을 주고, 청각적 몽타주의 기능을 수행하는 등 영화의 주제와 미학에 상당히 기여했다. 이러한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청년 음악영화는 1975년 동시적으로 일어난 긴급조치 9호 발동 및 대중문화 연예인 대마초 파동, 대중가요 금지곡 발표 등으로 변곡점을 경유했다.","PeriodicalId":483983,"journal":{"name":"Eo'mun nonjib","volume":"10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Eo'mun nonjib","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33335/kll.98.5","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引用次数: 0

Abstract

1970년대 텔레비전의 등장과 함께 영화와 라디오는 올드 미디어로서 위기를 겪게 된다. 30~40대 이상이 텔레비전 수상기로 이동하자 라디오와 영화는 새로운 관객층을 발견하게 되는데 청바지 입은 10~20대의 청년층이었다. 라디오는 심야 음악방송으로, 극장은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청년(대학생) 영화로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고자 했다. 1970년대 중반 한국영화는 국가의 새로운 영화시책에 부응하는 한편 새로운 관객들의 기호와 취향을 적극 반영하여 제작되었다. 월간 《영화》의 단신기사를 살펴보면 이 시기 “음악영화”, “뮤지컬”, “세미 뮤지컬”로 명명된 채 제작된 다수의 영화를 확인할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아마추어 청년 뮤지션 및 이들의 표상을 활용하여 젊은 세대의 모럴, 음악적 취향과 정서를 반영한 포크ㆍ록 음악영화들이 다수 등장했다. 본 연구는 이들을 기존의 음악영화와 변별되는 ‘청년 음악영화’로 분류하여 그 전개 과정에 주목한다. 청년 음악영화 속 초창기 명랑한 대학생 혹은 ‘교정 가능한 청년’ 표상은 점차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방치된 재수생, 낙오자 등 비주류 청년들의 표상으로 전이되어 갔다. 청년 음악영화에서 음악은 영화에 분위기를 조성하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서 서사의 연결에 기여하여 내러티브에 통일성을 주고, 청각적 몽타주의 기능을 수행하는 등 영화의 주제와 미학에 상당히 기여했다. 이러한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청년 음악영화는 1975년 동시적으로 일어난 긴급조치 9호 발동 및 대중문화 연예인 대마초 파동, 대중가요 금지곡 발표 등으로 변곡점을 경유했다.
感官的变化,70年代中期“韩国青年音乐电影”的发展
20世纪70年代,随着电视的出现,电影和广播作为老媒体面临危机。30~40岁以上的人一进入电视接收器,广播和电影就发现了新的观众层,那就是穿牛仔裤的10~20多岁的青年层。广播是深夜音乐广播,剧场是以年轻人为对象的青年(大学生)电影,试图发掘新的市场。20世纪70年代中期,韩国电影在响应国家的新电影政策的同时,积极反映了新观众的爱好和兴趣。如果查看月刊《电影》的简讯,就可以看到这一时期被命名为“音乐电影”、“音乐剧”、“半音乐剧”的多部电影。20世纪70年代中期,利用业余青年音乐家及他们的形象,出现了反映年轻一代道德、音乐取向和情绪的民歌、摇滚音乐电影。本研究将他们分类为与现有的音乐电影相区别的“青年音乐电影”,关注其展开过程。青年音乐电影中初创时期明朗的大学生或“可以矫正的青年”的形象逐渐转移到被搁置在讽刺状况中的复读生、落选者等非主流青年的形象。在青年音乐电影中,音乐超越了给电影营造氛围的单纯功能,对叙事的连接做出了贡献,给故事情节带来统一性,履行听觉模拟画像的功能等,对电影的主题和美学做出了相当大的贡献。在这样的时代氛围中,青年音乐电影通过1975年同时发生的紧急措施9号发动及大众文化艺人大麻风波、发表大众歌曲禁止曲等,经过了转折点。
本文章由计算机程序翻译,如有差异,请以英文原文为准。
求助全文
约1分钟内获得全文 求助全文
来源期刊
自引率
0.00%
发文量
0
×
引用
GB/T 7714-2015
复制
MLA
复制
APA
复制
导出至
BibTeX EndNote RefMan NoteFirst NoteExpress
×
提示
您的信息不完整,为了账户安全,请先补充。
现在去补充
×
提示
您因"违规操作"
具体请查看互助需知
我知道了
×
提示
确定
请完成安全验证×
copy
已复制链接
快去分享给好友吧!
我知道了
右上角分享
点击右上角分享
0
联系我们:info@booksci.cn Book学术提供免费学术资源搜索服务,方便国内外学者检索中英文文献。致力于提供最便捷和优质的服务体验。 Copyright © 2023 布克学术 All rights reserved.
京ICP备2023020795号-1
ghs 京公网安备 11010802042870号
Book学术文献互助
Book学术文献互助群
群 号:604180095
Book学术官方微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