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The placeness of ‘home’ and the violence of patriarchal system revealed in <Hyangnangjeon> and <Seoul Station>","authors":"EunWoo Lee","doi":"10.24185/sswuhr.2023.08.48.283","DOIUrl":null,"url":null,"abstract":"‘집’은 인간의 근원적 장소이고 모든 여정의 귀환점이다. 그러나 17세기 <향랑전>의 주인공 향랑과 21세기 <서울역>의 주인공 혜선은 끝내 귀가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담보로 신체를 버리고 이념으로 생존하는 ‘열녀’와 이념을 버리고 신체로 생존하는 ‘좀비’는 다른 듯하면서도 닮아 있다. 본 연구는 <향랑전>과 <서울역>의 두 주인공 향랑과 혜선이 어린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그녀들의 행적이 줄곧 ‘집’이라는 장소를 향하고 있는 점, 그러나 끝내 비극적인 죽음을 겪는다는 점, 그런데 열녀라는 평판과 좀비라는 신체로 부활한다는 점, 여기에는 서사의 배경이 되는 ‘선산’과 ‘서울역’이라는 공간의 특성이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공유한다는 특징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그녀들의 겪은 비극의 원인이 가부장제가 갖는 폭력성에 있다는 것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논의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하였다. 하나는 ‘집’이라는 장소가 갖는 특성을 규명한다. 가부장제 하에 ‘집’은 아버지로 대표되는 남성이 주인인 장소이다. 주인 남성은 미성년이거나 미혼의 여성을 돌보아야 하는 책임과 이에 기반한 권력을 소유한다. 향랑이 거듭 유기되고 혜선이 착취되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데는 그녀들에게 생존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제공해주지 못한 무능한 ‘아버지’들의 책임이 절대적이다. 이어서 ‘아버지’로 환유되는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부양자와 포식자를 넘나드는 권력의 무경계성, ‘집 안’의 구원자로서의 어머니의 부재와 ‘집 밖’의 구원자로서의 국가와 종교의 방임이라는 차원에서 분석한다. 우위의 가장이 열위의 구성원을 부양하는 수혜자―시혜자의 관계는 손쉽게 포식자―피식자의 먹이사슬로 전락한다. 이 끔직한 비극을 막아줄 수 있는 ‘집’의 성인 여성 구성원 어머니의 존재는 두 작품 모두에서 부재한다. ‘어머니’는 ‘계모’로 대체되거나 ‘죽은 어머니’나 ‘성모’와 같은 이상화된 허상으로 등장할 뿐이다. 향랑과 혜선의 실질적 영역과 상징적 영역에서의 각각 최종 보호자 역할을 수행하는 국가와 종교마저도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히려 국가는 이들의 죽음을 각각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강화와 재앙의 근원으로 소모하였다. 300년 전 향랑과 오늘날 혜선은 끝내 귀가하지 못한 채 갓 스무살 남짓의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죽음은 비극은 삭제되고 각기 자살로 절개를 지킨 평민 열녀, 좀비라는 재앙의 씨앗으로 기입되고 있다. 원초적 공간인 ‘집’에조차 소속되지 못한 사회적 약자인 그녀들의 비극을 규명하고 정당한 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PeriodicalId":483270,"journal":{"name":"Inmun gwahag yeon-gu","volume":"49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Inmun gwahag yeon-gu","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24185/sswuhr.2023.08.48.283","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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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집’은 인간의 근원적 장소이고 모든 여정의 귀환점이다. 그러나 17세기 <향랑전>의 주인공 향랑과 21세기 <서울역>의 주인공 혜선은 끝내 귀가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담보로 신체를 버리고 이념으로 생존하는 ‘열녀’와 이념을 버리고 신체로 생존하는 ‘좀비’는 다른 듯하면서도 닮아 있다. 본 연구는 <향랑전>과 <서울역>의 두 주인공 향랑과 혜선이 어린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그녀들의 행적이 줄곧 ‘집’이라는 장소를 향하고 있는 점, 그러나 끝내 비극적인 죽음을 겪는다는 점, 그런데 열녀라는 평판과 좀비라는 신체로 부활한다는 점, 여기에는 서사의 배경이 되는 ‘선산’과 ‘서울역’이라는 공간의 특성이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공유한다는 특징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그녀들의 겪은 비극의 원인이 가부장제가 갖는 폭력성에 있다는 것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논의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하였다. 하나는 ‘집’이라는 장소가 갖는 특성을 규명한다. 가부장제 하에 ‘집’은 아버지로 대표되는 남성이 주인인 장소이다. 주인 남성은 미성년이거나 미혼의 여성을 돌보아야 하는 책임과 이에 기반한 권력을 소유한다. 향랑이 거듭 유기되고 혜선이 착취되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데는 그녀들에게 생존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제공해주지 못한 무능한 ‘아버지’들의 책임이 절대적이다. 이어서 ‘아버지’로 환유되는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부양자와 포식자를 넘나드는 권력의 무경계성, ‘집 안’의 구원자로서의 어머니의 부재와 ‘집 밖’의 구원자로서의 국가와 종교의 방임이라는 차원에서 분석한다. 우위의 가장이 열위의 구성원을 부양하는 수혜자―시혜자의 관계는 손쉽게 포식자―피식자의 먹이사슬로 전락한다. 이 끔직한 비극을 막아줄 수 있는 ‘집’의 성인 여성 구성원 어머니의 존재는 두 작품 모두에서 부재한다. ‘어머니’는 ‘계모’로 대체되거나 ‘죽은 어머니’나 ‘성모’와 같은 이상화된 허상으로 등장할 뿐이다. 향랑과 혜선의 실질적 영역과 상징적 영역에서의 각각 최종 보호자 역할을 수행하는 국가와 종교마저도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히려 국가는 이들의 죽음을 각각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강화와 재앙의 근원으로 소모하였다. 300년 전 향랑과 오늘날 혜선은 끝내 귀가하지 못한 채 갓 스무살 남짓의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죽음은 비극은 삭제되고 각기 자살로 절개를 지킨 평민 열녀, 좀비라는 재앙의 씨앗으로 기입되고 있다. 원초적 공간인 ‘집’에조차 소속되지 못한 사회적 약자인 그녀들의 비극을 규명하고 정당한 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