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A Study on Promotional Posters for the 1929 Joseon Exhibition","authors":"Jejeong Kim","doi":"10.17647/jss.2023.08.92.109","DOIUrl":null,"url":null,"abstract":"1929년 조선박람회 포스터의 제작 과정과 내용을 살펴보고, 이를 일본의 1928년 大禮記念博覽會, 대만의 1935년 臺灣博覽會와 비교해보았다.BR 조선총독부는 조선박람회를 홍보하기 위한 포스터를 제작하기로 하고, 그 도안을 현상 모집하였다. 도안 조건은 포스터의 디자인에 조선과 관련된 것을 반드시 넣도록 하여 조선과의 연관성을 중시하였고, 식민통치의 결과로 발달한 조선의 모습을 적절하게 선전할 수 있도록 할 것이었다. 당선자는 모두 일본인이었으며 심사위원이 모두 일본 대학교수였을 뿐만 아니라 심사 과정도 일본에서 이루어졌다. 조선박람회 포스터에는 조선박람회의 큰 특징 중 하나였던 ‘조선식’ 건축양식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경회루를 비롯한 경복궁의 건물이 사용되고, 조선의 각종 산업과 문화가 표시되는 등 조선총독부가 제시한 도안 조건에 비교적 충실하였다.BR 1928년 일본의 도쿄, 나고야, 교토의 세 도시에서 개최된 大禮記念博覽會의 포스터를 살펴보았다. 大禮記念京都大博覽會의 1등작은 조선박람회의 1등작과 전체적인 구성이 매우 흡사하였다. 다만 大禮記念京都大博覽會가 천황 즉위를 기념한 박람회였고, 개최 장소 또한 일본의 대표적 전통 도시 교토였음에도 불구하고, 포스터에 전통적 요소가 많지 않은 것이 조선과의 차이였다. 근대적 새로움을 보여주는 박람회의 기본 성격을 고려하면, 일본의 경우가 더 일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BR 1935년의 대만박람회 포스터 역시 일본 작가에 대한 의뢰와 현상 모집으로 제작하였다. 조선의 경우 현상 모집의 비중이 컸고, 대만의 경우 의뢰의 비중이 컸다는 차이는 있었다. 조선박람회 포스터에 조선의 전통적 요소가 상당히 부각되어 있던 것에 반해, 대만박람회 포스터에서는 대만의 전통적인 부분을 찾기는 어려웠다.","PeriodicalId":473306,"journal":{"name":"Seoulhag yeon'gu","volume":"9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Seoulhag yeon'gu","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17647/jss.2023.08.92.109","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引用次数: 0
Abstract
1929년 조선박람회 포스터의 제작 과정과 내용을 살펴보고, 이를 일본의 1928년 大禮記念博覽會, 대만의 1935년 臺灣博覽會와 비교해보았다.BR 조선총독부는 조선박람회를 홍보하기 위한 포스터를 제작하기로 하고, 그 도안을 현상 모집하였다. 도안 조건은 포스터의 디자인에 조선과 관련된 것을 반드시 넣도록 하여 조선과의 연관성을 중시하였고, 식민통치의 결과로 발달한 조선의 모습을 적절하게 선전할 수 있도록 할 것이었다. 당선자는 모두 일본인이었으며 심사위원이 모두 일본 대학교수였을 뿐만 아니라 심사 과정도 일본에서 이루어졌다. 조선박람회 포스터에는 조선박람회의 큰 특징 중 하나였던 ‘조선식’ 건축양식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경회루를 비롯한 경복궁의 건물이 사용되고, 조선의 각종 산업과 문화가 표시되는 등 조선총독부가 제시한 도안 조건에 비교적 충실하였다.BR 1928년 일본의 도쿄, 나고야, 교토의 세 도시에서 개최된 大禮記念博覽會의 포스터를 살펴보았다. 大禮記念京都大博覽會의 1등작은 조선박람회의 1등작과 전체적인 구성이 매우 흡사하였다. 다만 大禮記念京都大博覽會가 천황 즉위를 기념한 박람회였고, 개최 장소 또한 일본의 대표적 전통 도시 교토였음에도 불구하고, 포스터에 전통적 요소가 많지 않은 것이 조선과의 차이였다. 근대적 새로움을 보여주는 박람회의 기본 성격을 고려하면, 일본의 경우가 더 일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BR 1935년의 대만박람회 포스터 역시 일본 작가에 대한 의뢰와 현상 모집으로 제작하였다. 조선의 경우 현상 모집의 비중이 컸고, 대만의 경우 의뢰의 비중이 컸다는 차이는 있었다. 조선박람회 포스터에 조선의 전통적 요소가 상당히 부각되어 있던 것에 반해, 대만박람회 포스터에서는 대만의 전통적인 부분을 찾기는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