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Aesthetic Cityscape of Gyeongseong and Alternative Images of Koreans -Focusing on Gyeongseong photo postcards and Donga-ilbo’s Gyeongseong-baekseung","authors":"Yuri Seo","doi":"10.17647/jss.2023.08.92.135","DOIUrl":null,"url":null,"abstract":"이 논문은 경성의 도시 ‘미관(美觀)’의 형성과 이를 반영한 일본인 제작의 사진엽서의 이미지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조선인의 반미학적, 대안적 태도를 동아일보사의 『경성백승』을 중심으로 도출해보았다. 경성의 도시건설 과정은 미학적 태도의 제도화와 병행하며, 도시의 근대적 미관을 구축하고 이를 사진엽서로 이미지화하는 과정을 동반했다. 식민지적 조건에서 이 과정을 조선인이 기획하고 주도할 수는 없었다. 경성 사진엽서의 소재는 ‘린칸노비(輪奐の美)’를 자랑하는 총독부청사, 경성부청사, 조선은행 등 근대건축과 이를 보완, 장식하는 궁궐건축이 중심이 되고, 사진은 건축의 안면성과 외곽선 등을 미학적으로 구성했다. 도시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포착한 경성의 사진엽서는 통치성을 정당화하고 관광업의 경제적 효과의 연계시켜 식민지 근대도시 경성의 미관을 선전하는 미디어의 역할을 했다. 조선인 발행의 경성 사진엽서가 부재한 것은 식민자가 주도한 도시미관의 형성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방증한다고 보았다. 반면, 조선인 공동체를 연결시키는 미디어 정치와 문화적 민족주의의 중심적 언론기관이었던 『동아일보』는 1924년 독자들과 호응하며 「내동리 명물」로 연재한 기사를 1929년 조선박람회에 맞추어 『경성백승』의 제목으로 출간했다. 사진엽서 상품을 연상시키는 제목과 달리, 『경성백승』은 식민지 통치의 부정의함을 비판하고, 대한제국기와 조선시대의 역사를 결부시킴으로써, 경성 북촌 조선인 거주지역의 장소성을 재발견했다. 『경성백승』은 경성 사진엽서에는 부재한 장소를 반미학적 구성으로 사진찍어, 조선인의 현대사와 과거사가 담긴 장소로 의미화했다. 『경성백승』은 장소를 역사화하고 역사를 장소화하여, 사진엽서의 미관과 통치성을 해체하고, 조선민족의 경성으로 재규정함으로써 대안적 경성 이미지를 창출했다. 이 논문은 경성 이미지의 기록자료로서의 이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미지가 수행하는 사회적, 정치적 작용을 복합적으로 분석하여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경성 장소성에 대한 대조적인 시선과 태도를 조명하였다.","PeriodicalId":473306,"journal":{"name":"Seoulhag yeon'gu","volume":"9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Seoulhag yeon'gu","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17647/jss.2023.08.92.135","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引用次数: 0
Abstract
이 논문은 경성의 도시 ‘미관(美觀)’의 형성과 이를 반영한 일본인 제작의 사진엽서의 이미지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조선인의 반미학적, 대안적 태도를 동아일보사의 『경성백승』을 중심으로 도출해보았다. 경성의 도시건설 과정은 미학적 태도의 제도화와 병행하며, 도시의 근대적 미관을 구축하고 이를 사진엽서로 이미지화하는 과정을 동반했다. 식민지적 조건에서 이 과정을 조선인이 기획하고 주도할 수는 없었다. 경성 사진엽서의 소재는 ‘린칸노비(輪奐の美)’를 자랑하는 총독부청사, 경성부청사, 조선은행 등 근대건축과 이를 보완, 장식하는 궁궐건축이 중심이 되고, 사진은 건축의 안면성과 외곽선 등을 미학적으로 구성했다. 도시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포착한 경성의 사진엽서는 통치성을 정당화하고 관광업의 경제적 효과의 연계시켜 식민지 근대도시 경성의 미관을 선전하는 미디어의 역할을 했다. 조선인 발행의 경성 사진엽서가 부재한 것은 식민자가 주도한 도시미관의 형성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방증한다고 보았다. 반면, 조선인 공동체를 연결시키는 미디어 정치와 문화적 민족주의의 중심적 언론기관이었던 『동아일보』는 1924년 독자들과 호응하며 「내동리 명물」로 연재한 기사를 1929년 조선박람회에 맞추어 『경성백승』의 제목으로 출간했다. 사진엽서 상품을 연상시키는 제목과 달리, 『경성백승』은 식민지 통치의 부정의함을 비판하고, 대한제국기와 조선시대의 역사를 결부시킴으로써, 경성 북촌 조선인 거주지역의 장소성을 재발견했다. 『경성백승』은 경성 사진엽서에는 부재한 장소를 반미학적 구성으로 사진찍어, 조선인의 현대사와 과거사가 담긴 장소로 의미화했다. 『경성백승』은 장소를 역사화하고 역사를 장소화하여, 사진엽서의 미관과 통치성을 해체하고, 조선민족의 경성으로 재규정함으로써 대안적 경성 이미지를 창출했다. 이 논문은 경성 이미지의 기록자료로서의 이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미지가 수행하는 사회적, 정치적 작용을 복합적으로 분석하여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경성 장소성에 대한 대조적인 시선과 태도를 조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