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The Unification Discourse among the Second-Generation Koreans in Japan in the 1970s","authors":"Sukeui Sohn","doi":"10.21442/djs.2023.60.11","DOIUrl":null,"url":null,"abstract":"본 논문의 목적은 1970년대 이후 재일한국인 2세의 ‘조국 민주화 운동’ 속에 내 포된 통일 담론을 살펴보는 데 있다. 일본에 거주하면서 한국을 ‘조국’으로 삼은 이들의 운동은, 민단이 추진한 민족운동이나 한국에서의 학생운동으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았음과 동시에, 일본한국재일동포사회라는 삼각관계 속에서 독자적인 성격을 형성해 나갔다. 재일한국인 2세에게 ‘조국 통일’은 크게 두 가지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으로 여겨졌다. 하나는 재일한국/조선인에 대한 전후 일 본 정부의 ‘부당한’ 외국인 정책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한반도 분단체제가 일본의 차별적 외국인 처우를 정당화하고 있다며, 냉전 구도의 종언, 즉 민주화를 통한 한 반도 통일만이 재일한국/조선인에 대한 처우를 시정할 길임을 주장했다. 두 번째는 ‘조국 통일’을 통한 본인의 ‘민족성 회복’이었다. 청년기에 겪은 사회적 억압의 경 험은 재일한국인 2세에게 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심을 심었고, 이렇게 형성된 ‘피해자의식의 민족성’이 학생운동을 통해 ‘조국 민주화’를 외치던 재일한국인 2세 의 원동력이 되었다. 학생운동이 나타낸 조국 민주화와 그 뒤에 있을 ‘통일’에 대 한 외침은 개인의 주체성 및 정체성과 직결되는, 절실한 희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재일한국인 2세의 조국 민주화 운동은 ‘운동’으로서의 성과 를 얻지 못한 측면이 있지만, 정체성에 대한 갈등을 겪는 재일한국인 2세들의 ‘집 단’으로서의 경험은 오늘날의 재일한국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회로로서 검토될 필요가 있다.","PeriodicalId":491996,"journal":{"name":"Ilbonhag","volume":"47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Ilbonhag","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21442/djs.2023.60.11","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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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 논문의 목적은 1970년대 이후 재일한국인 2세의 ‘조국 민주화 운동’ 속에 내 포된 통일 담론을 살펴보는 데 있다. 일본에 거주하면서 한국을 ‘조국’으로 삼은 이들의 운동은, 민단이 추진한 민족운동이나 한국에서의 학생운동으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았음과 동시에, 일본한국재일동포사회라는 삼각관계 속에서 독자적인 성격을 형성해 나갔다. 재일한국인 2세에게 ‘조국 통일’은 크게 두 가지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으로 여겨졌다. 하나는 재일한국/조선인에 대한 전후 일 본 정부의 ‘부당한’ 외국인 정책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한반도 분단체제가 일본의 차별적 외국인 처우를 정당화하고 있다며, 냉전 구도의 종언, 즉 민주화를 통한 한 반도 통일만이 재일한국/조선인에 대한 처우를 시정할 길임을 주장했다. 두 번째는 ‘조국 통일’을 통한 본인의 ‘민족성 회복’이었다. 청년기에 겪은 사회적 억압의 경 험은 재일한국인 2세에게 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심을 심었고, 이렇게 형성된 ‘피해자의식의 민족성’이 학생운동을 통해 ‘조국 민주화’를 외치던 재일한국인 2세 의 원동력이 되었다. 학생운동이 나타낸 조국 민주화와 그 뒤에 있을 ‘통일’에 대 한 외침은 개인의 주체성 및 정체성과 직결되는, 절실한 희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재일한국인 2세의 조국 민주화 운동은 ‘운동’으로서의 성과 를 얻지 못한 측면이 있지만, 정체성에 대한 갈등을 겪는 재일한국인 2세들의 ‘집 단’으로서의 경험은 오늘날의 재일한국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회로로서 검토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