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ree kingdoms’ relations with China and biǎowén(表文)

ChanU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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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삼국은 4세기 이래 중국왕조와 조공·책봉관계를 맺고 대체로 외교문서로써 표문을 사용했다. ‘奉表稱臣’이라는 상투어에서 볼 수 있듯이, 표문은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문서이다. 삼국의 표문은 조공·책봉관계, 나아가 군신관계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삼국이 표문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시기의 조공·책봉관계(군신관계)는 그 名과 實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삼국의 표문 사용에 대해서는 이를 단순히 중국왕조에 대해 정치적 상하관계를 표방한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BR 기록상 고구려는 3세기 전반, 백제는 5세기 초, 신라는 7세기 초에 표문 사용 사실이 처음 확인된다. 물론 삼국의 표문 사용 개시 시점은 기록보다는 좀 더 앞설 가능성이 있지만, 대체로 위의 시점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삼국의 표문 형식이나 거기에 사용된 어구 등은 대체로 동시기 중국왕조의 表式과 큰 차이는 없었다. 표문의 작성은 당초 낙랑군 등 변군출신이나 중국계 유민이 담당했지만, 한자문화의 확산과 유학 교육 실시 등을 계기로 점차 삼국 내에서 양성된 문인이 이를 대신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BR 삼국은 대체로 중국왕조의 表式을 준수하거나 군신관계와 관련된 다양한 어구를 적극활용하여 표문을 작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의 준수는 일종의 외교전략에 가까웠다. 삼국이 표문의 성격을 이해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한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삼국은 대개 ‘奉表稱臣’함으로써 중국왕조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실리를 얻는 데 중점을 두었다.
三国与中国的关系及biǎowén(通译)
三国自4世纪以来与中国王朝建立朝贡、册封关系,大体上作为外交文书使用表文。从“古表臣子”的套话中可以看出,表文是臣子献给国王的文书。三国的表文与朝贡、册封关系乃至君臣关系不无关系。但是三国正式使用表文时期的朝贡、册封关系(君臣关系)名称和实际并不一定一致。因此,对于三国的表文使用,不能单纯地将其理解为标榜对中国王朝的政治上下关系。从BR记录上可以首次确认高句丽在3世纪前半期、百济在5世纪初、新罗在7世纪初使用标文的事实。当然,三国开始使用标记的时间可能会比记录有所领先,但大体上不会大幅脱离上述时间。三国的表文形式以及使用的语句等,大体上与同期中国王朝的表式没有太大区别。表文的制作当初由乐浪郡等卞军出身或华裔游民负责,但据认为,以汉字文化的扩散和儒学教育的实施等为契机,逐渐由三国内培养的文人来代替。BR三国大体上遵守中国王朝的表观式或积极利用与君臣关系相关的多种语句制作了表文。但遵守这种形式接近于一种外交战略。我们有必要关注三国理解表文的性质,并战略性地加以利用,以达到预期目的的一面。当然也有例外,三国大多将重点放在通过“倒表臣子”来维持与中国王朝的友好关系和获得实际利益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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