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A Study on the establishment and development of military education policies for students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authors":"Seonghak Kim","doi":"10.15704/kjhe.45.3.202309.47","DOIUrl":null,"url":null,"abstract":"일제는 현역장교를 학교에 배속하여 실시한 군사교련을 정책적으로 매우 중시했다. 이는 당시 학교교육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본 연구는 이 군사교련 정책의 전체 변동 과정을 밝히고 그 동인이 무엇이었는지 도출하고자 했다. 일제시기 조선인 학생에 대한 군사교련 정책은 네 단계를 거치며 변동하여 갔다. 제1단계는 군사교련 원천 봉쇄 시기였다(1910~1925년). 한말 병식체조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던 시기로서 일제는 체조과 교과과정과 학교체조교수요목에서 군사훈련 관련 교재를 배제했다. 제2단계는 군사교련의 도입과 제한적 추진 시기였다(1926-1927년). 일본본국의 방침에 따라 군사교련 정책을 시행하지만 여전히 조선인 군사교련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조선인의 경우, 경성사범학교 학생들만이 군사교련의 대상이 되었다. 제3단계는 군사교련의 점진적 확대 시기였다(1928~1936년). 학생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자 군사교련의 훈육적 효과에 주목하여 관공립 공학제 학교에서부터 점차 조선인 고등보통학교까지 확대했다. 제4단계는 군사교련의 전면적 확대 강화 시기였다(1937~1945년). 군사교련의 목적을 국방능력의 증진으로 재설정하고 전시동원체제를 적극 후원했다. 군사교련을 대학 학부에서 필수화하고, 사립 전문학교와 중등학교까지 확대했다. 군사교련수업에 대한 통제와 내용을 강화했다. 일제시기 군사교육 정책의 변동을 야기한 근본적인 동인은 식민지 체제에서 군사교육 자체에 내재된 이중성에 있었다. 식민통치자에게 군사교육은 가능성과 위험성을 지닌 양날의 칼이었다. 일제시기 군사교육 정책의 변동 과정은 이 위험성에 대한 경계에서 가능성에 대한 확신으로 나아간 과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PeriodicalId":256932,"journal":{"name":"The History of Korean Education","volume":"130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The History of Korean Education","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15704/kjhe.45.3.202309.47","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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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일제는 현역장교를 학교에 배속하여 실시한 군사교련을 정책적으로 매우 중시했다. 이는 당시 학교교육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본 연구는 이 군사교련 정책의 전체 변동 과정을 밝히고 그 동인이 무엇이었는지 도출하고자 했다. 일제시기 조선인 학생에 대한 군사교련 정책은 네 단계를 거치며 변동하여 갔다. 제1단계는 군사교련 원천 봉쇄 시기였다(1910~1925년). 한말 병식체조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던 시기로서 일제는 체조과 교과과정과 학교체조교수요목에서 군사훈련 관련 교재를 배제했다. 제2단계는 군사교련의 도입과 제한적 추진 시기였다(1926-1927년). 일본본국의 방침에 따라 군사교련 정책을 시행하지만 여전히 조선인 군사교련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조선인의 경우, 경성사범학교 학생들만이 군사교련의 대상이 되었다. 제3단계는 군사교련의 점진적 확대 시기였다(1928~1936년). 학생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자 군사교련의 훈육적 효과에 주목하여 관공립 공학제 학교에서부터 점차 조선인 고등보통학교까지 확대했다. 제4단계는 군사교련의 전면적 확대 강화 시기였다(1937~1945년). 군사교련의 목적을 국방능력의 증진으로 재설정하고 전시동원체제를 적극 후원했다. 군사교련을 대학 학부에서 필수화하고, 사립 전문학교와 중등학교까지 확대했다. 군사교련수업에 대한 통제와 내용을 강화했다. 일제시기 군사교육 정책의 변동을 야기한 근본적인 동인은 식민지 체제에서 군사교육 자체에 내재된 이중성에 있었다. 식민통치자에게 군사교육은 가능성과 위험성을 지닌 양날의 칼이었다. 일제시기 군사교육 정책의 변동 과정은 이 위험성에 대한 경계에서 가능성에 대한 확신으로 나아간 과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