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회화’의 연구사 -풍속화의 재발견과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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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 연구는 한국미술사가 근대학문으로서 본격적으로 구축되는 과정에서, 각별히 조선후기 회화의 연구사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조선후기 회화의 주요 장르로 부각된 풍속화의 위상변화 및 시대적 인식을 이해하고,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檀園 金弘道(1745-1806)에 초점을 맞춰보았다.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을 통사적으로 서술하기 시작했던 일본인들은 조선후기 회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김홍도 역시 미술사 서술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김홍도는 조선회화사의 중심적 존재로 인식되며, 특별히 풍속화는 김홍도의 特長이자 전통회화의 精髓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근현대기의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에 있어서 조선후기, 풍속화에 대한 인식변화와 서술양상을 면밀히 살피고,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화가 김홍도=풍속화가의 통설이 작동하는 계기에 초점을 맞춰보았다. 이 과정에서 박물관, 미술관의 공적 전시를 위한 조사·수집과 일본인들의 초기 조선미술 연구가 깊은 관련 하에 있었다는 점, 『개벽』, 『문장』과 같은 문예지가 유교와 당쟁에 침몰해버린 시대로 비추어졌던 조선후기와 그 시대의 회화예술을, 민족 문화가 창달했던 새로운 전성기로 선양하는 무대가 되었음을 관찰했다. 또한, 조선후기 회화사의 형성과정에서 풍속화는 조선적, 사실적, 근대적, 때로는 혁명적 장르로 재발견되며 김홍도를 대표하는 장르로 부각되었으나, 동시에 신선도는 중국식, 비합리적, 비사실적이며 상상의 산물로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김홍도의 신선그림에 대한 텍스트는 점차 희미해졌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朝鲜后期绘画”的研究史——风俗画的再发现和檀园金弘道
本研究在韩国美术史作为近代大学文正式构筑的过程中,特别关注朝鲜后期绘画的研究史。特别是理解了作为朝鲜后期绘画的主要体裁的风俗画的地位变化及时代认识,作为代表朝鲜后期的画家,将焦点放在了檀园金弘道(1745 ~ 1806)上。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开始用通史方式叙述朝鲜美术的日本人对朝鲜后期绘画不感兴趣,金弘在美术史叙述中所占的比重也不大。但是今天,金弘道被认为是朝鲜绘画史的中心存在,风俗画尤其成为金弘道的特长和传统绘画的中心。对此,在近现代时期的朝鲜时代绘画史研究上,仔细观察了对朝鲜后期、风俗画的认识变化和叙述情况,并将焦点放在了朝鲜后期的代表性画家金弘道=风俗画画家的通说启动的契机上。在此过程中,博物馆,美术馆的公共展览旨在调查、收集和日本人的初期朝鲜美术研究有很深的有关,这一点,《开天辟地》,像《文章》文艺杂志时,沉没在儒教和党争鉴于时代的朝鲜后期和那个时代的绘画艺术,民族文化繁荣的新决定,全省沈阳的舞台已进行了观察。另外,朝鲜后期绘画师的形成过程中,风俗画,朝鲜籍,其实有时,近代革命题材被重新发现,代表金弘道的类型,但同时崛起成为中国式新鲜,不合理,秘史业绩开始理解,是想象的产物,对金弘道的新鲜的画逐渐淡漠了文本就可以查看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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