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鲜战争期间外国传教士的殉难与传教

JeongHyun Kim
{"title":"朝鲜战争期间外国传教士的殉难与传教","authors":"JeongHyun Kim","doi":"10.35135/casky.2023.23.205","DOIUrl":null,"url":null,"abstract":"가톨릭 교회는 3년이나 진행된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괴되고 큰 피해를 입었다. 외국인 선교사들은 본당과 신자들을 지키기 위해 피난을 가지 않 았기 때문에, 북한군에 의해 체포되거나 희생되었다. 이 때문에 가톨릭교 회는 한국전쟁 기간 반공주의가 강화되고 한국전쟁을 성전(聖戰)이나 십 자군 전쟁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냉전과 종교의 관계를 거시적 인 조망에서 분석하는 기존의 연구들은 그리스도교 교회를 구성하고 공산 주의를 만났던 구체적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지 닌다. 고난을 당한 선교사들이 체험하고 남긴 기록은, 한국전쟁을 악마와 대 결을 벌이는 성전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준다. 성골롬반외방 선교회는 전쟁 당시 납북되거나 사망한 선교사들에 대한 조사보고, 정전협상과 포로석방을 위한 노력, 전시 선교 현황보고 등의 기록을 남겼다. 지금까지 한국전쟁기 선교사들의 활동과 문서 관련 연구는, 메리놀선교회, 베네딕도회, 골롬반회의 활동과 자료소개 등 각 수도회와 외방선교회 별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포괄적으로 정리한 글은 거의 없다. 이 글은 각 수도회 선교사들이 죽음의 행진을 겪고 수용소에서 석방되어 남긴 수기와 골롬반 문서를 추가하여, 남북한 각 수도회 선교사들의 수용소 생활, 정전 협상과 석방 과정, 남한에서 교회 재건을 위한 선교사들의 노력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보았다. 이를 통해 선교사들이 증오와 적대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떠한 태도와 실천으로 선교 사명을 이루어 나갔는지, 전쟁 기간 선교사들이 남한 교회 재건을 위해 기울인 노력에 대해 알아보았다. 죽음의 행진을 겪고 생환한 선교사들의 수기에는 순교를 서술하면서도 반공이나 냉전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성찰을 보여주었다. 선교사들의 납북 체험기와 증언에는 순교 정신과 용서와 회개를 위한 기도가 들어있다. 증오와 적대,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전쟁상황에서 선교사들은 오히려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는 선교와 신앙의 실천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였다. 선교사들의 순교와 1953-54년 수용소에서 선교사들이 석방되어 생환한 소식은 각 수도회뿐 아니라 선교사들의 고국인 미국·프랑스·독일·벨기에·영국·아일랜드·호주 등지에서도 대서 특필되었다. 납북 선교사들이 남긴 생생한 수기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출판되어 번역되고 주목을 받았다. 본국의 수도회와 가톨릭 신자들은 생환된 선교사들이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후 다시 한국으로 입국하여 선교의 행진을 벌일 때, 이들을 적극 후원하였다. 선교사들의 수난과 순교는 전시 남한에서의 선교와 구제 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기반이자 추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PeriodicalId":476085,"journal":{"name":"Gyohoe sahag (Suwon gyohoe'sa yeon'guso)","volume":"209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title\":\"Martyrdom and Mission of Foreign Missionaries during the Korean War\",\"authors\":\"JeongHyun Kim\",\"doi\":\"10.35135/casky.2023.23.205\",\"DOIUrl\":null,\"url\":null,\"abstract\":\"가톨릭 교회는 3년이나 진행된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괴되고 큰 피해를 입었다. 외국인 선교사들은 본당과 신자들을 지키기 위해 피난을 가지 않 았기 때문에, 북한군에 의해 체포되거나 희생되었다. 이 때문에 가톨릭교 회는 한국전쟁 기간 반공주의가 강화되고 한국전쟁을 성전(聖戰)이나 십 자군 전쟁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냉전과 종교의 관계를 거시적 인 조망에서 분석하는 기존의 연구들은 그리스도교 교회를 구성하고 공산 주의를 만났던 구체적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지 닌다. 고난을 당한 선교사들이 체험하고 남긴 기록은, 한국전쟁을 악마와 대 결을 벌이는 성전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준다. 성골롬반외방 선교회는 전쟁 당시 납북되거나 사망한 선교사들에 대한 조사보고, 정전협상과 포로석방을 위한 노력, 전시 선교 현황보고 등의 기록을 남겼다. 지금까지 한국전쟁기 선교사들의 활동과 문서 관련 연구는, 메리놀선교회, 베네딕도회, 골롬반회의 활동과 자료소개 등 각 수도회와 외방선교회 별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포괄적으로 정리한 글은 거의 없다. 이 글은 각 수도회 선교사들이 죽음의 행진을 겪고 수용소에서 석방되어 남긴 수기와 골롬반 문서를 추가하여, 남북한 각 수도회 선교사들의 수용소 생활, 정전 협상과 석방 과정, 남한에서 교회 재건을 위한 선교사들의 노력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보았다. 이를 통해 선교사들이 증오와 적대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떠한 태도와 실천으로 선교 사명을 이루어 나갔는지, 전쟁 기간 선교사들이 남한 교회 재건을 위해 기울인 노력에 대해 알아보았다. 죽음의 행진을 겪고 생환한 선교사들의 수기에는 순교를 서술하면서도 반공이나 냉전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성찰을 보여주었다. 선교사들의 납북 체험기와 증언에는 순교 정신과 용서와 회개를 위한 기도가 들어있다. 증오와 적대,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전쟁상황에서 선교사들은 오히려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는 선교와 신앙의 실천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였다. 선교사들의 순교와 1953-54년 수용소에서 선교사들이 석방되어 생환한 소식은 각 수도회뿐 아니라 선교사들의 고국인 미국·프랑스·독일·벨기에·영국·아일랜드·호주 등지에서도 대서 특필되었다. 납북 선교사들이 남긴 생생한 수기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출판되어 번역되고 주목을 받았다. 본국의 수도회와 가톨릭 신자들은 생환된 선교사들이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후 다시 한국으로 입국하여 선교의 행진을 벌일 때, 이들을 적극 후원하였다. 선교사들의 수난과 순교는 전시 남한에서의 선교와 구제 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기반이자 추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PeriodicalId\":476085,\"journal\":{\"name\":\"Gyohoe sahag (Suwon gyohoe'sa yeon'guso)\",\"volume\":\"209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Gyohoe sahag (Suwon gyohoe'sa yeon'guso)\",\"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35135/casky.2023.23.205\",\"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Gyohoe sahag (Suwon gyohoe'sa yeon'guso)","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35135/casky.2023.23.205","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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摘要

天主教会因持续3年的韩国战争而遭到破坏和巨大损失。外国传教士没有去避难保护本堂和信徒,因此被北韩军队逮捕或牺牲。因此天主教会在韩国战争期间加强了反共主义,将韩国战争认识为圣殿或十子军战争。但是,从宏观角度分析冷战和宗教关系的现有研究无法反映组成基督教教会并会见共产主义的具体人士的“声音”,具有一定的局限性。遭受苦难的传教士体验并留下的记录,很难将韩国战争单纯化为与恶魔展开对决的圣殿。圣格罗姆班外方传教会留下了对战争当时被北绑架或死亡的传教士的调查报告、停战协商和为释放俘虏的努力、战时传教情况报告等记录。到目前为止,韩国战争时期传教士的活动和文件相关研究由梅里诺传教会、本笃会会、戈洛姆班会的活动和资料介绍等各修道会和外方传教会组成,几乎没有将此全部整理的文章。这篇文章各修道会传教士在死亡的行进,经历集中营获释留下的手记和球,增加罗姆班文书、南北韩各修道会的传教士的收容所生活,停战谈判和释放过程,在南韩重建教会传教士的努力如何持续重新看了他们的声音。通过这本书,我们了解了传教士在憎恶、敌对以及意识形态对立不得不加强的情况下,以怎样的态度和实践完成了传教使命,以及战争期间传教士为重建南韩教会所付出的努力。在经历死亡的行进后生还的传教士的手记中,在叙述殉教的同时,表现出了与反共和冷战意识形态无关的基督教的信仰和反省。传教士的被北绑架体验记和证言中包括殉教精神和宽恕和悔改的祈祷。在憎恶、敌对以及意识形态对立只能加强的战争状况下,传教士反而履行了不拘泥于意识形态的传教和实践信仰的使命。传教士的殉教和1953年至54年在收容所释放传教士生还的消息不仅在各修道会,在传教士的祖国美国、法国、德国、比利时、英国、爱尔兰、澳大利亚等地也被大肆报道。被北韩绑架的传教士留下的手记被翻译成英语、德语、法语,受到了关注。本国的修道会和天主教信徒在生还的传教士1953年7月签署停战协定后重新回到韩国进行传教游行时,积极支援他们。可以说,传教士的受难和殉教成为战时在南韩传教和救济事业蓬勃发展的基础和推动力。
本文章由计算机程序翻译,如有差异,请以英文原文为准。
Martyrdom and Mission of Foreign Missionaries during the Korean War
가톨릭 교회는 3년이나 진행된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괴되고 큰 피해를 입었다. 외국인 선교사들은 본당과 신자들을 지키기 위해 피난을 가지 않 았기 때문에, 북한군에 의해 체포되거나 희생되었다. 이 때문에 가톨릭교 회는 한국전쟁 기간 반공주의가 강화되고 한국전쟁을 성전(聖戰)이나 십 자군 전쟁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냉전과 종교의 관계를 거시적 인 조망에서 분석하는 기존의 연구들은 그리스도교 교회를 구성하고 공산 주의를 만났던 구체적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지 닌다. 고난을 당한 선교사들이 체험하고 남긴 기록은, 한국전쟁을 악마와 대 결을 벌이는 성전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준다. 성골롬반외방 선교회는 전쟁 당시 납북되거나 사망한 선교사들에 대한 조사보고, 정전협상과 포로석방을 위한 노력, 전시 선교 현황보고 등의 기록을 남겼다. 지금까지 한국전쟁기 선교사들의 활동과 문서 관련 연구는, 메리놀선교회, 베네딕도회, 골롬반회의 활동과 자료소개 등 각 수도회와 외방선교회 별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포괄적으로 정리한 글은 거의 없다. 이 글은 각 수도회 선교사들이 죽음의 행진을 겪고 수용소에서 석방되어 남긴 수기와 골롬반 문서를 추가하여, 남북한 각 수도회 선교사들의 수용소 생활, 정전 협상과 석방 과정, 남한에서 교회 재건을 위한 선교사들의 노력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보았다. 이를 통해 선교사들이 증오와 적대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떠한 태도와 실천으로 선교 사명을 이루어 나갔는지, 전쟁 기간 선교사들이 남한 교회 재건을 위해 기울인 노력에 대해 알아보았다. 죽음의 행진을 겪고 생환한 선교사들의 수기에는 순교를 서술하면서도 반공이나 냉전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성찰을 보여주었다. 선교사들의 납북 체험기와 증언에는 순교 정신과 용서와 회개를 위한 기도가 들어있다. 증오와 적대,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전쟁상황에서 선교사들은 오히려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는 선교와 신앙의 실천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였다. 선교사들의 순교와 1953-54년 수용소에서 선교사들이 석방되어 생환한 소식은 각 수도회뿐 아니라 선교사들의 고국인 미국·프랑스·독일·벨기에·영국·아일랜드·호주 등지에서도 대서 특필되었다. 납북 선교사들이 남긴 생생한 수기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출판되어 번역되고 주목을 받았다. 본국의 수도회와 가톨릭 신자들은 생환된 선교사들이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후 다시 한국으로 입국하여 선교의 행진을 벌일 때, 이들을 적극 후원하였다. 선교사들의 수난과 순교는 전시 남한에서의 선교와 구제 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기반이자 추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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