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缓和期北中关系的变化与北日关系的展开:对\"两个朝鲜\"政策与韩日基本条约的暗示","authors":"박정진","doi":"10.17331/kwp.2015.31.1.002","DOIUrl":null,"url":null,"abstract":"1970년대 초반에 이루어진 중국의 대미화 해와 유엔가입은 북한에게 안전보장과 정통성의 위협을 초래했다. 이때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북한에게 안보위협을 상쇄시키는 효과는 물론 한국의 고립을 초래하고, 이를 통해 정통성의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유력한 전략으로 부상했다. 따라서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를 밀접히 하는 한편 대일접근을 구체화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한일기본조약의 실체를 인정하고, 유엔기구에의 가입 역시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이는‘두 개의 조선’입장에 입각한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북한의‘조국통일 5대방침’이 내건 두 개의 조선 반대의 슬로건과 한국과의 유엔동시가입 거부는 이러한 북한의 전략이 좌절했음을 의미한다. 데탕트기 북중관계의 변용과 북일관계의 재편은 북한의 대외전략 수정과정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한편 이와 대척점에 있는 한국의 ‘6.23 선언’은 일본의 대한반도정책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었다. 동 선언의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주장은 북한정권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었고, 이는 곧 일본의 대북접근을 허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일기본조약 제3조에 대한 남북한의 인식이 일본측의 해석으로 수렴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유산은 탈냉전기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로 이전된다.","PeriodicalId":268221,"journal":{"name":"Korea and World Politics","volume":"79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15-03-0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title\":\"데탕트기 북중관계의 변화와 북일관계의 전개: \\\"두 개의 조선\\\"정책과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시사\",\"authors\":\"박정진\",\"doi\":\"10.17331/kwp.2015.31.1.002\",\"DOIUrl\":null,\"url\":null,\"abstract\":\"1970년대 초반에 이루어진 중국의 대미화 해와 유엔가입은 북한에게 안전보장과 정통성의 위협을 초래했다. 이때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북한에게 안보위협을 상쇄시키는 효과는 물론 한국의 고립을 초래하고, 이를 통해 정통성의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유력한 전략으로 부상했다. 따라서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를 밀접히 하는 한편 대일접근을 구체화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한일기본조약의 실체를 인정하고, 유엔기구에의 가입 역시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이는‘두 개의 조선’입장에 입각한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북한의‘조국통일 5대방침’이 내건 두 개의 조선 반대의 슬로건과 한국과의 유엔동시가입 거부는 이러한 북한의 전략이 좌절했음을 의미한다. 데탕트기 북중관계의 변용과 북일관계의 재편은 북한의 대외전략 수정과정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한편 이와 대척점에 있는 한국의 ‘6.23 선언’은 일본의 대한반도정책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었다. 동 선언의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주장은 북한정권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었고, 이는 곧 일본의 대북접근을 허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일기본조약 제3조에 대한 남북한의 인식이 일본측의 해석으로 수렴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유산은 탈냉전기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로 이전된다.\",\"PeriodicalId\":268221,\"journal\":{\"name\":\"Korea and World Politics\",\"volume\":\"79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15-03-0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Korea and World Politics\",\"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17331/kwp.2015.31.1.002\",\"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Korea and World Politics","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17331/kwp.2015.31.1.002","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데탕트기 북중관계의 변화와 북일관계의 전개: "두 개의 조선"정책과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시사
1970년대 초반에 이루어진 중국의 대미화 해와 유엔가입은 북한에게 안전보장과 정통성의 위협을 초래했다. 이때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북한에게 안보위협을 상쇄시키는 효과는 물론 한국의 고립을 초래하고, 이를 통해 정통성의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유력한 전략으로 부상했다. 따라서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를 밀접히 하는 한편 대일접근을 구체화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한일기본조약의 실체를 인정하고, 유엔기구에의 가입 역시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이는‘두 개의 조선’입장에 입각한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북한의‘조국통일 5대방침’이 내건 두 개의 조선 반대의 슬로건과 한국과의 유엔동시가입 거부는 이러한 북한의 전략이 좌절했음을 의미한다. 데탕트기 북중관계의 변용과 북일관계의 재편은 북한의 대외전략 수정과정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한편 이와 대척점에 있는 한국의 ‘6.23 선언’은 일본의 대한반도정책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었다. 동 선언의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주장은 북한정권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었고, 이는 곧 일본의 대북접근을 허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일기본조약 제3조에 대한 남북한의 인식이 일본측의 해석으로 수렴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유산은 탈냉전기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로 이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