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946 Cholera Pandemic in Pusan and Kyŏngnam, and the Post-Asian Pacific War Regional Politics of East Asia

Chong-Myong 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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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1946년 5월 상순 중국 송환자에게서 콜레라가 발병하기 시작한 부산 지역은 그달 중순 무렵 남조선에서 발병자 규모가 가장 큰 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6월 중순 무렵부터 콜레라 환자 발생 증가 정도가 둔화하기 시작해, 하순 경에는 발병세가 적잖이 ‘약화’하였다. 부산 지역 발병 추이는 경상남도 군부(郡部) 지역과 타도(他道) 지역의 그것과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것은 수인성(水因性) 전염병인 콜레라의 발병 상황을 악화시켰던 6월 하순의 대홍수였다. 부산과 달리 홍수 피해가 심각하였던 군부(郡部) 지역에서는 콜레라 발병세가 증대·악화하였다. 이러한 속에서 콜레라가 부산 주변 지역으로, 또 경남 내륙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군부 지역 환자·사망자 문제는 심각해졌다. 이와 같은 발병 동향을 보여준 경남 지역은 콜레라가 종식되던 그해 말 남조선의 10개 시·도 단위 지역 중 높은 순위의 누적 환자·사망자 규모를, 그러나 낮은 순위의 누계 발병·치명도를 보여주었다.BR 이처럼 요약되는 부산과 경남 지역 콜레라 확산 과정과 그 귀결은 여러 특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그 과정에는 세균학적, 자연적 요소와 함께 인문 지리적인, 그리고 사회·경제적, 국가적(national), 그리고 지역적(local) 수준에서의 정치적 요인 등이 작동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아시아-태평양 전쟁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 구축이라는 동아시아 권역(regional) 수준의 정치 또한 작동하고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하여 발생했던 1946년 콜레라 사태는 전후 동아시아 권역에서 제국의 시대로부터 민족의 시대로의 전환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바로 이것이 콜레라 대유행의 전후 역사적 의미라 할 수 있다.
1946年釜山和Kyŏngnam霍乱大流行,以及亚太战争后东亚地区政治
1946年5月上旬被遣送回中国的人开始发病霍乱的釜山地区,在当月中旬左右成为了韩国发病人数规模最大的地区。然而,从6月中旬开始,霍乱患者的发病增加程度开始减弱,到下旬,发病势头大为“减弱”。釜山地区的发病趋势与庆尚南道郡部地区和他道地区形成了鲜明的对比。其中决定性的是使水因性传染病霍乱的发病状况恶化的6月下旬的大洪水。与釜山不同,洪水灾害严重的郡部地区霍乱发病率增大、恶化。在这种情况下,霍乱扩散到釜山周边地区和庆南内陆地区,军方地区的患者、死亡者问题变得非常严重。出现这种发病动向的庆南地区在霍乱结束的当年年末,在南朝鲜的10个市、道单位地区中,显示出了较高的累计患者和死亡者规模,但显示出了较低的累计发病和致命度。像BR这样概括的釜山和庆南地区霍乱扩散过程及其结局表现出了各种特征。首先,在这一过程中,除了细菌学、自然因素外,人文、地理、社会、经济、国家(national)以及地区(local)水平上的政治因素等也在发挥作用。与此同时,亚太战争以后美国构建东亚霸权的东亚地区(regional)水平的政治也在启动。以此为背景发生的1946年霍乱事态是战后东亚地区从帝国时代向民族时代转换的过程。这可以说是霍乱大流行前后的历史意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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