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Critical Consideration of Putnam’s Argument of the Brain in a Vat – Some Pictures -","authors":"Je Chul Bak","doi":"10.21738/jhs.2023.8.50.35","DOIUrl":null,"url":null,"abstract":"퍼트남은 전통적인 철학적 주제 중 하나인 외부세계 회의론을 현대적으로 각색해 만든, 통 속의 뇌 가설을 제기한다. 우리가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이 세계가, 사실은 컴퓨터가 연결된 통 속의 뇌에 전기신호가 주어짐으로써 펼쳐지는, 그러한 세계라는 것이 통 속의 뇌 가설이다. 퍼트남은 자신의 “지칭의 인과적 제약 이론”을 통해, 이러한 가설이 절대 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러한 통 속의 뇌 가설은 개념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퍼트남의 논변이 실패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퍼트남이 자신의 논변을 펼치면서, 전통적으로 제기된, 혹은 통 속의 뇌 가설이 제시하는 그림을 매우 심각하게 훼손한 후, 자신의 결론에 도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래의 외부 세계 회의론은, 우리세계를 “실재세계”로 간주하고, 그러한 “실재세계”가 사실은 가상임을 주장한다. 그런데 퍼트남이 최종적으로 그려낸 외부세계 회의론 그림에는 “실재세계”가 빠지고 대신 “이미지 세계”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그 “이미지 세계”에서의 모든 발화들은 “이미지 속의”라는 수식어를 달도록 그렇게 설정되어 있다. “실재세계”에서의 모든 발화들은 액면가 그대로 이해된다. 그래서 “나무는 파랗다”라는 발화는 액면가 그대로 “나무는 파랗다”로 이해된다. 하지만 퍼트남이 최종적으로 그린 외부세계 회의론 그림에서의 “이미지 세계”는, 거기에서의 모든 발화가 특정한 방식으로 번역되도록 그려져 있다. 그 “이미지 세계”에서의 발화 “나무는 파랗다”는, “이미지 속의 나무는 파랗다”로 번역되게끔 설정되어져 있다. 이것은 외부세계 회의론이 제시하는 그림과 완전히 다른 그림이다. 이렇게 원래의 외부세계 회의론이 제기하는 “실재세계”를 심각하게 왜곡시켜 자신만의 외부세계 회의론을 그려놓고 나서, 퍼트남은 자신이 외부세계 회의론을 깼다고 주장한다. 퍼트남은 외부세계 회의론이라는 깨기 어려운 주제를, 깨기 매우 쉬운 주제로 바꾼다. 그러고 나서 깨기 쉽게 변형된 주제를 공격하고는, 자신이 외부세계 회의론을 깼다고 주장한다. 전형적인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 사례로서, 이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이상, 퍼트남의 논변은 실패라고 할 수 있다","PeriodicalId":491130,"journal":{"name":"In'gan yeon'gu","volume":"4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In'gan yeon'gu","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21738/jhs.2023.8.50.35","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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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퍼트남은 전통적인 철학적 주제 중 하나인 외부세계 회의론을 현대적으로 각색해 만든, 통 속의 뇌 가설을 제기한다. 우리가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이 세계가, 사실은 컴퓨터가 연결된 통 속의 뇌에 전기신호가 주어짐으로써 펼쳐지는, 그러한 세계라는 것이 통 속의 뇌 가설이다. 퍼트남은 자신의 “지칭의 인과적 제약 이론”을 통해, 이러한 가설이 절대 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러한 통 속의 뇌 가설은 개념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퍼트남의 논변이 실패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퍼트남이 자신의 논변을 펼치면서, 전통적으로 제기된, 혹은 통 속의 뇌 가설이 제시하는 그림을 매우 심각하게 훼손한 후, 자신의 결론에 도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래의 외부 세계 회의론은, 우리세계를 “실재세계”로 간주하고, 그러한 “실재세계”가 사실은 가상임을 주장한다. 그런데 퍼트남이 최종적으로 그려낸 외부세계 회의론 그림에는 “실재세계”가 빠지고 대신 “이미지 세계”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그 “이미지 세계”에서의 모든 발화들은 “이미지 속의”라는 수식어를 달도록 그렇게 설정되어 있다. “실재세계”에서의 모든 발화들은 액면가 그대로 이해된다. 그래서 “나무는 파랗다”라는 발화는 액면가 그대로 “나무는 파랗다”로 이해된다. 하지만 퍼트남이 최종적으로 그린 외부세계 회의론 그림에서의 “이미지 세계”는, 거기에서의 모든 발화가 특정한 방식으로 번역되도록 그려져 있다. 그 “이미지 세계”에서의 발화 “나무는 파랗다”는, “이미지 속의 나무는 파랗다”로 번역되게끔 설정되어져 있다. 이것은 외부세계 회의론이 제시하는 그림과 완전히 다른 그림이다. 이렇게 원래의 외부세계 회의론이 제기하는 “실재세계”를 심각하게 왜곡시켜 자신만의 외부세계 회의론을 그려놓고 나서, 퍼트남은 자신이 외부세계 회의론을 깼다고 주장한다. 퍼트남은 외부세계 회의론이라는 깨기 어려운 주제를, 깨기 매우 쉬운 주제로 바꾼다. 그러고 나서 깨기 쉽게 변형된 주제를 공격하고는, 자신이 외부세계 회의론을 깼다고 주장한다. 전형적인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 사례로서, 이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이상, 퍼트남의 논변은 실패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