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udy of Misailrok Written by Lee Beom-jin, the Chosun Minister to the US in 1896

Hyo-Jeo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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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범진은 아관파천의 주역이었지만, 일본과 러시아 등 주변 세력으로부터 견제를 받아 자의든 타의든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1896년 6월 주차미국특명공사로 명받아 미국에 머물면서 『미사일록』이란 사행록을 남겼다. 『미사일록』은 1896년 6월 20일부터 1897년 1월 31일까지의 활동이 기록되었는데, 작성 기간이 재임 초기의 약 8개월뿐이기 때문에 전체 재임 기간 중 일부만을 알 수 있지만, 이범진의 미국 견문 내용, 외교 활동, 사상 등을 비교적 상세히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유의미하다. 이범진은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이른바 근대적 만국공법의 시스템 속에서 파견된 인사였지만, 그의 저작인 『미사일록』은 조선시대 사행록의 전통 속에서 서술되었다. 개인의 사적 일기라기보다는 공식 보고서에 가까우며, 따라서 공사 혼자만의 기록이 아닌 일행들과 함께 공동으로 저작되고 소유되는 특징을 보인다.BR 이범진의 미국 견문은 결국 새로운 제국, 미국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방문했던 워싱턴 기념탑, 국회의사당, 박물관 등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당대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소였다. 이범진은 그 안에서 조선이 살아나갈 방법을 찾고자 하였다. 그는 이미 근대의 환경에 익숙한 듯이 미국의 제도나 풍습, 여성 등 대부분의 견문에서 긍정적이며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결국 약소국인 조선이 제국들의 질서 속에서 소위 ‘부국강병’을 이룬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는 못하였다.
1896年朝鲜驻美公使李范镇所著《Misailrok研究》
李范晋虽然是俄馆播迁的主角,但由于受到日本和俄罗斯等周边势力的牵制,只能随心所欲地前往美国。1896年6月,他被美国特命停车,在美国停留,留下了《导弹录》的四行录。《导弹录》于1896年6月20日至1897年1月31日活动记录了,制作期间只有在任初期的约8个月,因此整个在任期间可以只知道部分,但李范陈毅美国见闻,外交活动,思想内容等比较详细,可以查看的资料以意义。李范晋是1876年《江华岛条约》以后,在所谓近代万国公法体系中被派遣的人士,但他的着作《飞弹录》是在朝鲜时代的史行录传统中进行叙述的。与其说是个人的私人日记,更接近于正式报告书,因此表现出不是公社一个人的记录,而是与一行人共同着作并拥有的特征。BR李范镇的美国见闻最终是再现新的帝国——美国。访问过的华盛顿纪念塔、国会议事堂、博物馆等是赤裸裸地暴露弱肉强食、适者生存这一当代现实的场所。李范晋想在其中寻找朝鲜生存的方法。他已经在近代的环境熟悉的一样,美国的制度或习俗、女性等大部分的见闻中肯定,表现出了和开放的态度,但最终弱小的朝鲜帝国国家秩序中所谓的“富国强兵”的就是从源头上存在一定的局限性,认识这一点没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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