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대구지역 한 양반가의 일기자료를 통해본 18세기 혼인풍속 -百弗庵 崔興遠의 『曆中日記』(1735~1786)를 중심으로-","authors":"정진영","doi":"10.21027/manusc.2019.54..009","DOIUrl":null,"url":null,"abstract":"이 연구는 백불암 최흥원(1705∼1786)의 『역중일기』를 중심으로 18세기 대구 한 양반가문의 혼례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과 절차 등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에 기반 하여 기존의 몇몇 연구성과에 대해서도 검토해 보았다.\n조선시대의 혼례는 신부 또는 신부 집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 같은 절차와 과정 가운데 혼례(초례) 이전은 『주자가례』와 대략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혼례의 의식과 이후의 절차는 아주 다르다. 이를 반친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기존의 전통적인 혼례와 타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전체적인 측면 외에도 구체적인 과정과 내용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주자가례』와 『사례편람』 등의 예서에 근거하여 서술된 기존의 연구성과는 당시의 현실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n이 연구는 18세기 대구 지역 한 양반가의 경우를 검토한 것이지만, 영남 명문 양반가의 일반적인 혼속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혼례란 다수의 상대를 가진 의례이기 때문이다.","PeriodicalId":308827,"journal":{"name":"古文書硏究","volume":"10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1900-01-0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古文書硏究","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21027/manusc.2019.54..009","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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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연구는 백불암 최흥원(1705∼1786)의 『역중일기』를 중심으로 18세기 대구 한 양반가문의 혼례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과 절차 등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에 기반 하여 기존의 몇몇 연구성과에 대해서도 검토해 보았다.
조선시대의 혼례는 신부 또는 신부 집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 같은 절차와 과정 가운데 혼례(초례) 이전은 『주자가례』와 대략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혼례의 의식과 이후의 절차는 아주 다르다. 이를 반친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기존의 전통적인 혼례와 타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전체적인 측면 외에도 구체적인 과정과 내용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주자가례』와 『사례편람』 등의 예서에 근거하여 서술된 기존의 연구성과는 당시의 현실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이 연구는 18세기 대구 지역 한 양반가의 경우를 검토한 것이지만, 영남 명문 양반가의 일반적인 혼속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혼례란 다수의 상대를 가진 의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