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ustrial Fluctuations and Locality of Busan with Records

J.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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引用次数: 2

Abstract

전통적으로 부산 일대에서 전통적인 정치.행정의 중심지는 정주공간인 동래이고, 부산은 동래부 동평현 부산포라는 어촌이었다. 개항 이후 일본과의 연이은 조약으로 일본인의 조선 내에서의 활동범위가 넓어지고 조선에서 일본인의 상업행위가 허용됨에 따라 일본인의 이주가 급증하였다. 일본은 조차나 임대, 매입 또는 매축을 통해 전관거류지와 서쪽 방면 일대, 북항 일대의 부지를 확보하고, 북항 일대에 공공시설과 상공업시설, 철도.항만시설을 구비하여 경부철도와 관부연락선이 바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이처럼 부산이 한일간 교통의 요충지가 되자 부산은 통상 중심의 상업이 발달하고, 부산항은 조선 최대의 무역항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이후 조선총독부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조선의 임야와 거대한 농지를 확보하고, 소작농이 도시 임금노동자로 전락하게 되었다. 회사령을 통해 조선 자본의 성장을 억제하고 일본 자본이 침투하여 일본인 기업이 대거 설립되었다. 1914년에 시가지는 부(府)로, 농촌은 군(郡)으로 지방행정조직이 개편됨에 따라 부산포 일대의 일본인이 개발한 지역은 부산부로, 그 외의 농촌지역은 동래군으로 바뀌었다. 새로 신설되는 공공시설과 상공업시설, 철도.항만시설은 부산부에 집중적으로 들어섬에 따라 변방이었던 이곳이 정치.행정 의 중심지로 탈바꿈하였다. 부산이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로 성장함에 따라 경상남도의 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하였다. 이로써 부산이 경상남도의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로 역할이 확대되었다. 토지조사사업으로 대규모 노동력을 확보하고, 회사령 철폐로 일본이 대자본이 식민지로 진출하였다. 부산진 방면의 매립으로 조선방직 등 대규모 공업시설이 설립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부산의 도시 정체성, 즉 로컬리티도 어촌에서 통상 위주의 상업도시로, 나아가 상공업 도시로 변모하게 되었다.
有记录的釜山产业波动和地域性
在釜山一带传统的政治。行政中心地是郑州空间东莱,釜山是东莱府东平县釜山浦的渔村。开港后,由于与日本签订了一系列条约,日本人在朝鲜的活动范围扩大,日本人在朝鲜的商业行为被允许,日本人移居剧增。日本通过租借、租赁、购买或购买,确保了前官居留地和西侧一带、北港一带的地皮,并在北港一带确保了公共设施和工商业设施、铁路。具备港口设施,京釜铁路与官延线直接相连。釜山成为韩日间交通的要塞后,釜山的通商中心商业发达,釜山港成为朝鲜最大的贸易港。朝鲜被日本合并后,朝鲜总督府通过土地调查工作,确保了朝鲜的林地和巨大的农地,佃农沦落为城市雇佣劳动者。通过公司令抑制朝鲜资本的增长,日本资本渗透,日本企业大举成立。1914年,地方行政组织改编为“府”、“郡”,釜山浦一带的日本人开发的地区改为“釜山府”,其他农村地区改为“东莱郡”。新设的公共设施,工商业设施和铁路。港口设施集中在釜山,因此曾是边防的这个地方就是政治。变成了行政中心。随着釜山成长为交通和贸易的中心,庆尚南道的道厅从晋州迁移到了釜山。至此,釜山的作用扩大到了庆尚南道的政治和行政中心。通过土地调查事业确保了大规模的劳动力,随着公司令的废除,日本的大资本进入了殖民地。釜山镇方面的填埋建立了朝鲜纺织等大规模工业设施。通过这样的过程,釜山的城市整体性,即地方城市也从渔村变成了以通商为主的商业城市,进而变成了工商业城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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